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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전 세월호 침몰은 국가의 무능과 자본의 탐욕 등 한국 사회에 오래 누적된 적폐가 만들어낸 비극적 사태였다. 며칠 뒤면 참사의 진상규명을 바라는 세월호 유족과 양심적 시민들의 염원 속에 세월호가 육지로 올라온다.

오랜 시간 유족들은 사회분열의 책임자란 오명을 뒤집어쓰고 온갖 조롱까지 감내해야 했다. 세월호 인양은 늦어도 너무 늦었다. 앞으로 청산되어야 할 적폐의 대상에는 세월호 인양과 진상규명 목소리를 ‘경제 프레임’으로 가두려 했던 정부의 과오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매사 비용과 효율만 따지려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천민자본주의적 행태도 마찬가지다.

세월호 사태는 한국 사회에 던지는 중대한 경고의 메시지였다. 그럼에도 박근혜 정부는 이를 덮고 시민들이 잊도록 집요하게 노력했다. 세월호 인양과 세월호특별법 제정 및 연장 요구 목소리를 옥죄는데 정부가 사용한 무기는 경제였다. 세월호의 비극을 슬퍼하지 않는 국민은 없지만 경제가 더 중요하지 않느냐며 그럴듯하게 포장했다. 그러는 사이 유족들과 양심세력은 정체조차 모호한 소비심리 악화의 주범으로 매도당했다.

26일 오전 전남 진도군 세월호 참사 해역 부근에 정박 중인 반잠수식 선박 ‘화이트마린호’에 세월호가 완전히 선적돼 선체 전체 모습이 보이고 있다. 진도 _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몇몇 발언들을 소개하면 박근혜 전 대통령은 “사회 불안이나 분열을 야기하는 언행들은 국민경제에 전혀 도움이 안 될 뿐 아니라 결정적으로 경제에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고 말했다.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과 정부에서도 “세월호 침몰 참사 여파로 인한 소비 위축·내수 부진이 매우 걱정스럽다”, “세월호 참사에 따른 소비심리 위축이 확산되면 경제회복의 불씨가 약해지지 않을까 생각된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왔다. 진상규명을 호소하는 유족과 시민단체, 야당의 요구가 정국 혼란으로 이어지고 소비를 위축시켜 경기 침체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논리였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해 “세월호 특조위를 연장하느냐 하는 문제는 국민 세금이 많이 들어가는 문제”라고도 말했다.

정부에 대한 신뢰야말로 소비심리 회복의 핵심적 요소다. 박근혜 정부가 참사의 원인을 명백히 밝히고 과오를 인정했다면 경제에 더 도움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경제에 대한 책임을 따지자면 국가의 규제와 감독의 실패에 더 큰 책임이 있다. 그럼에도 박근혜 정부는 경제를 들먹이며 유족들에 죄책감을 심었으며 보통 시민들에겐 유족들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확산시켰다. 세월호를 한시라도 빨리 잊어야 한다는 정부의 목소리에 일부 보수세력들도 세월호 탓에 한국 경제가 위협받고 있다며 위기감 조성에 가세했다. 이 모두가 세월호 진상규명을 두려워하는 세력의 속임수였을 뿐이다.

유족과 시민들간 소통과 공감을 끊으려는 냉혹하고 사악한 정부의 시도가 가능했던 것은 우리 사회에 퍼져 있는 효율 중시의 사고방식이 깔려 있다. 공동체의 정의는 뒤로 밀리고 비용과 이익 분석이 절대 기준이 되는 사회에서 세월호는 거추장스런 존재였을 것이다. 이런 풍토를 바꾸지 못하면 앞으로 안전 같은 공공의 영역은 계속 무너지고 제2의 세월호 참사가 오지 말란 법이 없다.

그래도 경제를 생각한다면 진짜 필요한 것은 철저한 진상규명이다. 성역없는 조사와 처벌을 통해 국가의 실패를 만천하에 드러내고 청산하는 게 진정 새로 출발하는 길이다. 우리 사회가 돈보다 생명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사회로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이 싹터야 한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나라가 큰 문제를 안고 있어도 미리 발견하면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치명적인 문제를 미리 파악하지 못해 모든 국민들이 알아차릴 만큼문제가 심각해지면 어떤 해결책도 소용이 없다”고 적었다. 로마가 오래도록 침몰하지 않고 버틸수 있었던 요인을 설명하는 과정에 한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 참사 후 민심이 박근혜 정권에 등을 돌렸다고 진단한다. 마키아벨리의 말을 적용하면 박근혜 정부가 참회하고 진상규명에 나섰다면 성공한 정부는 아니더라도 전직 대통령이 검찰에 구속될 수도 있는 지금의 상황만은 피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아마도 세월호가 목포신항에 도착해 진상규명 활동이 본격화하면 “아직도 세월호 타령이냐. 이제 그만 하자”, “대선주자들의 포풀리즘에, 중국의 사드보복에, 미국 보호주의로 경제가 망가지고 있는데 다시 세월호 문제까지 꺼내야 하나”란 목소리가 소리를 높일지 모른다. 하지만 다시는 세월호 앞에서 경제타령을 하지 말자. 경제로 또다시 진실규명을 막으려는 정치세력이 있다면 “칼로 사람을 죽이는 것과 정치로 사람을 죽이는 것은 다를바 없다”는 맹자의 말을 새길 일이다.

오관철 경제부장 okc@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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