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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순진 |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11월11일, 지난해 3월11일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계기로 탈핵에너지교수모임이 창립한 지 꼭 한 해가 된 날이었다. 국내외 1052명의 교수들은 ‘탈핵선언문’을 통해 원자력 발전은 “통제할 수 없는 위험을 통제한다”는 모순된 논리에 기초해 있으며 “미래세대, 미래의 생명을 죽음과 파멸로 몰아가는 폭력행위”임을 분명히 했다.
이어진 그린피스의 인터넷 브리핑을 통해 한국과 아랍에미리트, 브라질, 남아공을 제외한 대다수 원전 운영국들이 원전 비중을 축소하거나 신규 원전 건설을 연기 또는 취소하는 가운데 다수 유럽 국가들과 일본은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재생가능에너지를 늘려가면서 탈핵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위험하고 폭력적인 에너지 너머’, 그것은 미래가 아니라 이미 진행 중이다.
원전 미검증품 설치 현황
(경향신문DB)
하지만 우리 사회는 탈핵과 에너지 전환 행보에 여전히 소극적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에도 정부는 원전 확대정책 유지를 천명했다. 하지만 사용후 핵연료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분명하지 않은데다 최근 들어 원전들의 잦은 고장과 납품 비리, 불시 정지 사태가 이어지고 최근 영광3호기에서는 국내 원전 사상 처음으로 노심과 연결된 제어봉 안내관이라는 핵심 시설에 균열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런 일련의 사태로 원전에 대한 시민들의 의구심과 불안감이 커지고 있기는 하나 문제의 심각성에 비추어 지금의 사회적 반응은 미지근한 편이다. 이런 반응에는 언론의 책임이 크다. 최근의 원전 관련 사태에 대한 언론 보도를 보면 이런 일들로 원전사고가 일어나 우리의 생존 자체가 위태로워질 뻔했다는 사실에 주목하기보다 가동 중단으로 전력대란이 일어날 것을 더 걱정하고 있다.
원전은 한 기당 200만개에서 250만개의 부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원전은 너무나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이들 부품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어서 한 군데서라도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면 연쇄적으로 상호작용을 일으켜 어마어마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페로라는 사회학자는 사고 원인이 이런 복잡하고 꽉 짜인 체계 자체에 내재해 있다고 해서 이런 사고를 ‘체계사고’라고 부르기도 하고 복잡한 체계의 일상적인 작동 과정에서 이런 사고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정상사고’라 부르기도 한다. 즉, 원전사고는 원전을 가동하는 한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그래서 페로는 이런 특성을 지닌 기술은 폐기만이 해답이라고 단언했다.
그동안 심각한 원전사고가 일어난 미국, 구소련, 일본이 원전기술 선진국이란 사실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현재 세계 5대 원전대국 중 중대사고가 일어나지 않은 나라는 이들 3개국을 제외한 프랑스와 한국뿐이다. 사고가능성이 원천적으로 잠재해 있는 원전에 대해 짝퉁 부품을 쓰고 점검까지 소홀히 하며 정보공개도 하지 않고 있으니, 한국이 그 다음 사고국이 되지나 않을까 불안할 따름이다.
원전은 우리의 생명을 담보로 한 위험한 에너지다. 미래세대도 문제지만 일상적인 사고 위험에 노출돼 있어 현 세대도 결코 안전하지 않다. 어떤 삶을 원하는가? 안전을 담보로 위험을 감내하며 편리함만 추구할 것인가, 아니면 약간의 불편을 감내하더라도 안전하고 윤리적인 삶을 살아갈 것인가?
에너지 전환은 가능하다. 우리의 인식을 바꾸고 제도를 바꿔 나가면 소망은 현실이 된다. 12월19일, 우린 새로운 국가 지도자를 뽑는다. 국가 지도자가 원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원전을 넘어 어떤 에너지 미래를 열어가려 하는지, 꼭 살펴볼 일이다.
우리의 귀한 한 표, 환경을 살리고 안전하며 평화로운 에너지를 지향하는 후보에게 던져야 하지 않을까? 나와 우리 아이들의 건강하고 안전한 미래가 내 한 표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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