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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서 20기 이상의 원자로를 가동하는 국가 가운데 원전용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 연료봉 재활용 권한이 없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2014년 3월 만료되는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협상에서 한국의 안정적인 핵연료 확보를 위해 농축 및 재활용 권한을 되찾는 문제가 양대 쟁점이 된 까닭이다. 양국이 2년째 머리를 맞대고 있는 개정협상에서는 한국이 농축·재활용 권한을 되찾되 핵 비확산 우려를 불식시키는 방안을 마련 중이라는 보도다. 한국이 다국적 기업이 미국 내에 보유한 상업용 농축우라늄 시설의 투자지분을 확보함으로써 핵연료를 안정적으로 제공받는다는 것이다. 원자력협정 개정은 올해 말 등장할 한·미 양국의 새 정권이 내년 벽두부터 떠안아야 할 최대 현안인 만큼 큰 틀에서나마 합의를 찾아가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연료봉 재활용과 관련해서는 양국이 개정협상 초기에 이미 잠정적인 해법에 뜻을 모은 바 있다. 무기급 플루토늄을 추출하지 않고, 원전용 핵연료만 얻을 수도 있는 파이로프로세싱(사용후 핵연료 건식처리) 기법을 향후 10년간 공동연구하면서 그 결과를 협정문에 반영키로 했다. 원자력협정 개정협상에 임하는 양국 대표들은 한국이 권한은 되찾되, 그 행사는 잠정적으로 유보하는 방식에 공감대를 모으고 있다. 그 연장선상에서 핵확산금지조약이 이미 허용하고 있는 ‘평화적 핵이용권’을 협정문에 명시하되, 그 완전한 권리행사는 유예할 필요가 있다.
원자력협정 개정협상은 주권과 현실이 충돌한다는 점에서 최근의 한·미 미사일지침 개정협상과 맥을 같이하는 면이 있다. 하지만 미사일 능력과 핵 능력이 현실 국제정치에서 갖는 함의는 하늘과 땅 차이다. 우라늄 농축 및 연료봉 재활용 기술은 원전의 핵연료는 물론, 핵무기 제조에도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핵주권을 확보하되, 잠정적으로 영토 밖에 두는 것은 남북이 합의한 한반도비핵화선언의 이행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한국마저 핵무기 개발능력을 국내에 둔다면 평화로운 해법을 찾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국내 일각에서는 북한 핵실험을 빌미로 우라늄의 농축·사용·재활용 등 핵연료 주기를 완성해야 한다는 무책임한 주장을 하고 있다. 주권과 평화적 핵이용권에 기대 핵개발을 추진하면서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는 대표적인 나라가 북한과 이란이다. 반면교사로 삼아도 부족할 상황에 이들 국가를 모델로 삼겠다는 발상이나 다름없다.
이란 경찰이 폭탄테러로 숨진 나탄즈 우라늄 농축시설 부소장 무스타파 아마디 로샨의 자동차를 견인하고 있다.
(경향신문DB)
우리는 ‘핵무기 없는 한반도’는 물론, 궁극적으로 ‘핵에너지 없는 한반도’ 역시 실현가능하다고 믿는다. 단계적인 원전 폐쇄와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로 2050년까지 전체 에너지 수요의 60%를 재생에너지로 대체할 수 있다는 합리적 분석까지 나와 있다. 그때까지 원전에 쓰이는 핵연료의 안정적 공급이 필요할 뿐이다. 원자력협정 개정협상이 ‘선’을 넘지 않으면서 국익을 극대화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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