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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서울 광화문에 수백명의 아이들이 모였다. 이날 열린 ‘스쿨미투’ 집회에서 아이들은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며 학교 성폭력 근절을 촉구했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일이 반복되어야 하는가.

학교 현장에서 성희롱·성폭력 피해가 발생하면 관리·감독 주체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초등학교 교사가 교육활동 중에 다수의 학생들을 추행했다. 피해 학생들과 그 학부모들은 해당 초등학교를 설치·운영하는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도 손해배상을 청구했는데, 이 사건에서 법원은 지자체에 사용자 책임이 있음을 인정했다(광주지법 순천지원 2008가합2136).

지자체는 가해자인 교사에게 예방교육을 실시하는 등 상당한 주의를 다했다고 항변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학교와 교사에 대한 지도·감독의 의무를 지는 주체로서 교원적격검사를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등 성희롱 피해를 야기할 수 있는 교사가 혹시 있는지를 사전에 확인해야 했다는 것이다. 1~2시간의 교육만으로 그 책임을 다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만일 위험성이 있는 교원이 발견된다면 지자체는 개인상담을 포함한 특별연수, 지속적인 관찰 등 피해 발생을 사전에 방지할 효과적인 프로그램을 반드시 운영했어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모든 관리·감독 주체는 이 점을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이다.

3일 오후 서울 파이낸스 빌딩 앞에서 열린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 학생회 날 스쿨미투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집회는 청소년 페니니즘 모임, 전국청소년행동연대 날다,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전연대 등 34개 단체가 참여했다. 연합뉴스

다른 판결에서 법원은 13세 미만인 사람에게만 특별히 적용되는 추행죄(의제강제추행)에 관한 원칙을 분명히 했다. 이 범죄를 처벌하는 목적은 미성년자의 건강한 성장과 성숙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어서, 성인에 대한 추행과는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통의 강제추행죄는 원칙적으로 피해자가 항거할 수 없었거나 또는 항거를 곤란하게 하는 정도의 폭행·협박이 있었는지 여부를 따진다. 하지만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에 있어서는 가해자의 행위가 객관적으로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도덕관념에 반하기만 하면 폭행이나 협박이 없더라도 추행죄가 인정된다(서울중앙지법 2005노2022). 미성년자를 보다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서 범죄 성립 범위를 훨씬 넓게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밖에도 현행법은 또 다른 보완책을 구비했다. 성인 간의 성희롱은 형사범죄가 아니지만 19세 미만인 사람에 대한 ‘성희롱 등 성적 학대행위’는 형사처벌 대상이다. 올해 4월25일부터 새로 시행된 법은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형에까지 처할 수 있도록 했다. 성희롱이 성폭력범죄보다는 상대적으로 경미한 잘못에 불과하다는 세간의 오해가 있지만, 오히려 성희롱이 더 큰 상흔과 앙금을 남길 수도 있다.

형사절차 아닌 징계절차에서만 사안이 다뤄지더라도 가해자가 쉽게 법망을 빠져나갈 수 없다. 성 비위에 대해서는 시효를 10년으로 두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대법원은 피해자가 상당한 기간 동안 문제제기를 주저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까지 고려해 사건의 실체를 파악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시간이 조금 경과했더라도, 그리고 분명히 이상한 언행은 있었지만 학대행위에까지 이르는지가 다소 불분명하더라도 처음부터 단념할 필요는 없다.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의 경우, 벌금형이든 징역형이든 어떤 형을 받건 유죄가 확정되면 당연퇴직이다. 예외 없는 엄정한 법 적용과 집행이 절실하다.

<박찬성 | 변호사·포항공대 상담센터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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