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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10여년 전쯤부터 시작되었을까? 쾌청한 하늘을 보는 것이 운 좋은 하루의 시작일 줄이야.

요즘, 젖먹이 아기들은 어른도 목이 따가울 정도의 미세먼지를 피해서 공기청정기에 의존해 살아가고, 초등학생들은 매일 아침 마스크를 쓴 채 등교하는 풍경이 일상화되어 가고 있다. 

아이들이 이 나라에서 얼마나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면 암울하기 그지없다.

그런데도 지난 10년간 정부는 무엇을 했는가? 우리가 나라에 혈세를 납부하고 목숨을 걸고 군복무를 하는 것은 국가가 우리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준다는 믿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결국 무능한 정부는 촛불의 준엄한 심판을 받았다. 이는 사람들의 생명, 건강과 직결된 민생을 돌보지 못하고 해결능력이 결여된 무능한 정부는 존재가치가 없다는 것을 한국 헌정사에 각인시킨 것이다.

서울환경운동연합 소속 회원들이 1월 18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한 차량2부제의 민간 참여 법제화와 실질적인 교통수요관리대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정지윤 기자

그렇다면 최근 서울시가 미세먼지 저감을 위해서 시행한 대중교통 무료이용 정책은 어떠한 평가를 받을 것인가? 물론 정부가 정책을 시행함에 있어서는 사전에 그 비용과 효과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 선행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다. 그런 점에서 서울시의 이번 정책은 지속가능성이 떨어지고 시민의 혈세를 낭비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10년간 중앙정부는 물론 지방정부 모두 미세먼지 문제 해결에 의지를 보이기는커녕 문제의 심각성조차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인류사회의 진보는 시행착오의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다. 다소의 논란이 있었지만 그것이 사람들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려는 노력에서 비롯되었다면 무대책과 무능력으로 일관하는 정부와 비교할 수 없는 일이다.

미세먼지 저감을 위한 대중교통 이용촉진 정책은 이미 해외에서도 많이 시행되고 있다. 프랑스 파리는 고농도 미세먼지 발생 시 대중교통 무료이용과 강제 2부제를 병행하였으며, 최근에는 운행 중인 자동차를 대상으로 친환경 등급제를 통하여 일정한 페널티와 인센티브를 적절하게 혼합함으로써 미세먼지에 대하여 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대만과 벨기에의 브뤼셀도 이러한 방식으로 미세먼지를 퇴치하기 위한 시책을 부분적으로 시행 중이거나 예정하고 있다. 결국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서는 노후한 경유차량 등의 운행을 가능한 정도로 억제하고 시민들의 자발적인 협력을 바탕으로 대중교통 이용을 촉진하는 것인데, 이는 이미 글로벌한 전략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장이 시민사회 출신이고 포퓰리즘에 매몰되었다는 식상한 비판보다 많은 사람들의 행복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 보다 건설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미세먼지 문제의 본질에 다가가는 것이 아닐까. 최근 서울시가 제안한 차량 자율 2부제와 교통유발부담금 감면, 자동차 배출가스 친환경 등급제 등은 시민의 자발적인 참여를 바탕으로 하는 해법에 대해 시민들의 컨센서스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환경정책의 실효성을 제고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람들에게 명령하고 강제하는 전통적인 방법은 협치와 소통을 근간으로 하는 오늘날의 행정문화에서 일정한 한계를 노정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등장한 것이 경제적 유인정책과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와 같은 시장메커니즘을 활용하는 수단들이며, 이들은 모두 환경을 보호하고 우리의 건강을 지키겠다는 사람들의 자발적인 협력을 전제로 하고 있다.

사람들을 겁박하고 계도하는 정책은 이제 우리 사회에 설 자리가 없다. 사람들의 시민의식이 너무도 성숙했고, 민생 문제에 헛발질하는 정부를 차갑게 외면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국민의 의무’와 같이 무엇인가 공동체주의로 옥죄는 용어를 거부하고 공화제에 대한 실천적 이성을 간직하면서도 우리 모두의 행복과 삶의 질을 우선하는 매력 있는 정부를 선택하는 현명한 정부소비자들이 된 것이다.

건강과 행복을 위하여 필요한 합리적 수준의 비용을 기꺼이 지불하고 제도의 시행으로 인한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깨어 있는 정부소비자로서 과연 어떤 정부가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하는 비전과 능력이 있는지 지켜볼 것이다.

<김성수 |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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