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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여적]여제의 귀환

opinionX 2018. 3. 20. 10:57

‘믿고 보는 박인비’란 말 그대로였다. 박인비 선수는 19일 끝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뱅크 오브 호프 파운더스컵에서 우승, 19승째를 올렸다. 골프 팬들은 박인비가 여유 있게 상대 선수를 앞서 나갔기 때문에 마음 졸이지 않고 편하게 경기를 지켜볼 수 있었다. 물론 손에 땀을 쥐는 순간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었다. 마지막 라운드에서 후반 11번홀까지 1타를 줄이는 데 그친 사이 영국의 로라 데이비스가 1타차로 바짝 쫓아왔다. 12번홀에서 버디로 2타차로 벌리자 이번에는 미국의 마리나 알렉스가 또다시 1타차로 추격해왔다. 그러나 그는 13번홀에서 버디로 다시 2위그룹을 따돌렸다.

박인비가 18일 미국 애리조나 피닉스에서 열린 LPGA 투어 뱅크 오브 호프 파운더스컵 3라운드 16번홀에서 티샷을 하고 있다. 피닉스 _ AFP연합뉴스

박인비는 또 ‘퍼신’(퍼팅의 신) ‘침묵의 암살자’로 불릴 자격도 충분함을 입증했다. 뛰어난 퍼팅 실력으로 4연속홀 버디쇼를 펼치고, 표정의 변화가 없이 경기를 지배하는 승부사 기질도 보여줬기 때문이다. 드라이브 거리는 줄었지만 컴퓨터처럼 정확한 아이언샷과 쇼트게임으로 이를 보완했다. 여제가 귀환한 것이다.

‘영광과 고난의 2년’이었다. 그는 4개 메이저대회 우승을 포함한 18승을 거두며 최연소로 LPGA 명예의전당에 가입했고, 112년 만에 부활한 올림픽 골프종목에서 우승해 사상 최초로 ‘골든 커리어 그랜드 슬러머’ 자리에 올랐고, ‘골프 여제’ 칭호까지 얻었다. 하지만 잦은 부상으로 2년 동안 절반 가까이 대회에 출전하지 못했다. 골프선수로서 모든 것을 이뤘기 때문에 목표 의식도 희박해졌다. ‘이대로 주저앉을지 모른다’는 성급한 전망까지 나왔지만 박인비는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지난달 LPGA 투어 HSBC위민스 챔피언스 대회에 나가 샷을 가다듬은 뒤 두번째 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쥔 것이다.

박인비는 인터뷰에서 “부상 이후 계속 출전하지 않고 휴식을 취한 게 나은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말과 달리 눈에 띄게 살이 빠진 그의 모습은 지난겨울 얼마나 재활과 훈련에 열중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번 우승은 그가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대가인 셈이다. 박인비는 “부상 때문에 쉬게 됐을 때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생기나’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했다”고 돌아봤다. 챔피언들의 말은 언제나 울림을 준다.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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