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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기 농민의 부검을 둘러싼 미스터리는 이미 풀렸고 그 퍼즐은 맞춰졌다. 지난 9월 서울대병원 진료기록에 대한 두 가지 압수수색 영장과 두 번에 걸친 부검 영장, 그리고 ‘병사’와 ‘빨간 우비’라는 조각들을 통해 맞춰진 퍼즐이 보여주는 그림은 잔인하고 사악한 악마의 퍼즐, 바로 그것이었다.

지난 22일 방영된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보여준 물대포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고 물대포를 맞고 땅에 머리가 부딪쳐 생긴 두개골 양쪽에 생긴 골절이 백남기 농민을 돌아가시게 했을 것이라는 가설이 과학적 분석을 통해 사실로 증명됐다. 경찰이 근거자료라고 제시했던 물대포의 위력 검정서는 모두 거짓으로 판명됐다.

4일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열린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박남춘 의원이 지난해 민중총궐기 당시의 경찰의 물대포 직사 관련 동영상을 보여주며 질의하고 있다. 서성일 기자

백남기 농민이 병상에 누워있던 지난 9월6일 서울대병원 진료기록에 대한 1차 압수수색 영장은 강신명 경찰청장을 비롯한 6명의 경찰관을 피의자로 적시하고 있었으나 백남기 농민이 돌아가신 다음 날인 9월26일 2차 압수수색 영장의 피의자는 ‘성명 불상’, 즉 ‘빨간 우비’였다. 동일한 증거물에 대해 청구된 두 차례의 영장에 기재된 피의자가 경찰관에서 ‘빨간 우비’로 뒤집힌 것이다.

백남기 농민이 사망한 9월25일 밤 청구됐던 검찰의 1차 부검 영장은 기각됐으나 재청구된 2차 부검 영장이 9월28일 발부됐다. 동일한 사안에 대해 한 번 기각된 영장이 어떻게 살아날 수 있었느냐에 대한 의문은 해소되지 않았고 영장 전문 공개 요구는 지금까지도 거부되고 있으나 거기에 ‘빨간 우비’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사망진단서 역시 부검 영장 발부에 핵심적 역할을 했는데 만약 ‘외인사’로 기록된다면 서류 시스템상 자살이 아니므로 물대포에 의한 타살을 그 원인으로 기록할 수밖에 없게 되어있다. 즉 사망진단서에 ‘외인사’가 기록되는 순간 부검을 통한 살인범 뒤집기 프로젝트가 수포로 돌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어떤 무리수를 두더라도 ‘병사’로 기록돼야 했던 것이다.

얼마 전 ‘빨간 우비’가 전격적으로 기자간담회를 자청했다. 그는 사고 당시 자신이 있었던 곳과 백남기 농민이 쓰러졌던 곳은 20m 정도 떨어진 거리였고 백남기 농민이 쓰러지기 전부터 앰뷸런스에 실려 가기까지 그 자리를 뜨지 않았으며 차벽 위에는 수많은 채증카메라가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빨간 우비’라는 사실을 경찰이 모를 리가 없는데 왜 자신을 ‘빨간 우비’ 관련 조사를 하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경찰이 만약 그를 ‘빨간 우비’와 연관해 조사했다면 워낙 많은 증거 영상이 존재하기 때문에 무혐의로 끝났을 것이고 그렇게 무혐의로 마무리됐다면 지금처럼 ‘빨간 우비’를 ‘성명 불상’으로 언급하며 부검 영장 신청에 활용할 수가 없다.

즉 ‘빨간 우비’에게 백남기 농민 관련 무혐의라는 수사 결과를 주지 않기 위해 그 부분을 그냥 공중에 띄워놨던 것이다. ‘빨간 우비’는 여전히 신원이 확인될 수 없는 ‘신원 불상’이어야 했다. 영장에 제시된 잠정적 가해자인 ‘빨간 우비’가 등장했는데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으니 세상에 이런 블랙 코미디가 또 어디 있겠나 싶다.

23일에도 영장을 집행하겠다며 경찰이 장례식장에 들이닥쳐 영장 전문은 유족에게만 보여줄 수 있다고 버티고 있다. 이 나라의 공권력이 사기로 점철된 찌라시 같은 영장을 손에 들고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에 보는 사람이 다 애처로울 지경이다. 24일 국회에서 화합을 주제로 하는 대통령 시정연설이 있다고 들었는데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고밖에 할 수 없다. 영화 <베테랑>의 ‘감당할 수 있겠어요?’라는 대사가 생각난다.

<박병우 | 민주노총 대외협력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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