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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 권을 추천하고 싶다. <아흔 개의 봄>. 역사학자 김기협 선생이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돌보며 쓴 시병일기이다. 몇 년 전, 한 지인이 선물한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웃고, 또 울었다. 저명한 국문학자였던 선생의 어머니가 아기같이 동요를 부르고, 간식에 집착해 간병인과 티격태격하는 장면에서는 내 입가에서도 저절로 웃음이 흘러나왔다. 또 어떤 장면에서는 지방에 사는 연로한 부모님이 갑자기 생각나, 책을 덮고 한참 동안 먹먹한 마음을 가라앉히곤 했다. 그럴 때면, 나는 별 용건도 없이,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었다.

치매는 어머니의 자궁에서 나와 자란 인간이 다시 아기가 되어 가면서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되돌아가는 병이다. 인간이 태어나서 성장하는 과정은 그 자체가 축복과 기쁨이다. 그러나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되돌아가는 과정, 특히 아기가 되면서 되돌아가는 것은 그렇지 못하다. 기저귀 갈아주면서 키운 자식에게 자신이 아기가 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은 당사자에게는 공포이다. 어떤 질환을 가장 두려워하는지를 물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서, 응답 노인의 44%가 치매를 꼽았다. 노인에게 암보다 더 무서운 것이 치매이다.

알츠하이머, 치매, 감정변화 관련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가족에게는 고통이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처럼, 자식 된 도리로 감내하기에는 그 짐이 너무나 무겁다. 부모에 대한 애정은 원망으로 바뀌고, 부양을 누가 할 것인지를 두고 남편과 아내가, 형과 동생이 다툼을 벌인다. 함께 사는 가족은 한시도 마음을 놓지 못하고, 가족의 삶은 통째로 엉망이 되곤 한다. 치매 환자의 방치와 학대, 치매 환자와 가족의 동반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도 이런 데서 기인한다.

2014년 기준으로 치매 환자에 대한 직접 부양부담을 가지고 있는 가족의 수는 140만명에 이른다. 국민 35명 중의 1명꼴이다. 그리고 이들의 약 80%가 치매 환자 부양을 위해 일하는 시간을 줄였거나 직장을 그만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존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5년 동안 치매 환자 1명을 치료하고 간병하는 데 소요되는 사회적 비용은 약 1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말 정부는 제3차 치매관리종합계획을 발표했다. 공급자 관점에서 벗어나 수요자 관점에서 촘촘한 치매관리체계를 구축해 치매 환자와 가족이 지역사회에서 편안하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목표이다.

이를 위해, 박근혜 정부 임기 동안 연평균 800억원, 연구와 기술개발 등을 제외한 서비스 관련 예산 기준으로는 연평균 650억원을 투입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치매 환자 1인당 연간 9만6000원, 한 달에 8000원에 해당하는 액수이다. 이에 반해, 노인장기요양보험 보험료 수입의 20%를 지원하도록 한 국고지원의 미지급액은 2009년부터 7년 동안 3200억원에 이른다. 요란한 구호에도 불구하고, 환자와 가족들이 치매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치매 환자의 절반은 노인장기요양보험 혜택에서 여전히 제외되어 있고, 혜택을 받는 사람조차 서비스의 양과 질이 턱없이 부족하다. 치매 환자를 조기에 발견하고, 질병의 진행을 늦추는 치료를 조기에 받도록 연계하는 체계도 엉성하다. 치매는 환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족이 질병을 이해하고, 함께 극복해 나가야 하는 문제이다. 그러나 환자와 가족에게 질병을 이해시키고 제대로 대처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지원하는 지역사회 체계도 부족하다. 요양병원과 요양시설의 부실한 서비스와 치매 환자 학대에 대한 언론보도를 보노라면, 치매에 걸린 부모님을 안심하고 모실 수 있는 병원과 시설을 찾는 것도 큰 고역이다.

보건복지부는 현재 70여만명인 치매 환자가 2030년에는 130만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런 추세면, 2030년에는 전체 국민 20명 중 1명은 치매 환자에 대한 직접 부양부담을 지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개별 가계뿐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다.

치매는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노인장기요양서비스와 지역사회서비스의 양과 질을 대폭 강화하고, 30여만명에 이르는 요양서비스 종사자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 치매 환자를 돌보는 대다수 일자리는 임금이 낮고 불안정하다. 이런 일자리에서 품격 높은 서비스를 기대하는 것은 욕심이다.

정부의 재정적 책임성을 높이는 것도 당연한 선결과제이다. 요양병원과 요양시설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해 가족이 안심하고 환자를 맡길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치매 관리는 고령화 대책이고 민생 대책이며, 일자리 대책이다. 국가가 책임을 다해야 치매 환자의 자식도 인륜을 저버리지 않고 자식 된 도리를 다할 수 있다.

이진석 | 서울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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