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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의 “미혼모를 위한 히트앤드런 방지법을 만들어주세요”라는, 답변 대기 중인 청원이 눈에 크게 들어온다. 지난 2월부터 3월 한 달 사이에 무려 21만명이 서명을 한 것이다. ‘히트앤드런 방지법’이라는 말만으로는 그저 농담으로 생각할지도 모르나, ‘미혼모’라는 딱지를 떠안기고 무책임하게 떠나버리는 아이 아빠들에게 법적으로 경제적 책임을 부과하자는 진지한 청원이다.

덴마크에서는 이미 실시되고 있는데, 미혼모가 되게 한 남성에게 매달 약 60만원의 양육비를 내도록 강제하는 제도로 발뺌하거나 도망치기 어렵기 때문에 원하지 않는 임신을 피하려 노력한다고 한다. 이런 제도가 사회적 편견과 경제적인 어려움,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는 미혼모를 줄이는 데 나름대로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내가 일하고 있는 단체에서는 지난 수년 전부터 ‘미혼모를 위한 숲태교’를 진행해오고 있다. 미혼모의 경우 대체로 청소년이 많기 때문에 주위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출산 전에는 미혼모 시설에 입소하여 지내는 경우가 많다. 사회적 관계가 활발한 때에 닥쳐온 고립, 미래에 대한 불안, 신체적 변화의 스트레스에 시달리는데 숲태교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모처럼 자연휴양림의 맑은 공기와 싱그러운 녹음을 접하면 저절로 힐링이 된다고 한다. 숲태교는 산림자원을 매개로 전통적인 태교와 현대의 과학적 태교 이론을 수용하여 재창조한 신개념 프로그램이다. 우리 단체에서 숲태교의 개념을 세우고, 세미나를 열고, 프로그램을 다듬어온 지도 7년이 넘었다. 이제 임신부들에게 폭발적인 인기가 있고, 전국의 휴양림에서도 서비스하고 있는 새로운 문화 콘텐츠이다.

인간 최초의 학교가 자궁이라면, 인류 최초의 학교는 숲이다. 숲에서 길어올린 사유의 힘이 오늘날 인류문명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인류 최초의 학교인 숲에서 이루어지는 인간 최초의 학교 프로그램인 태교가 바로 ‘숲태교’이다. 몇 년 전 리우+20 정상회의에서 다루어진 많은 의제 중 하나로 세계태교연맹에서 주관한 ‘세상을 구하는 9개월’이라는 테마가 있었다. 인간 최초의 학교인 자궁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이야말로 세상을 구하는 길이라고 의제화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웠다. 우리는 숲태교가 세계보건기구(WHO)가 주창한 영적 복지의 시초이며, 산림복지의 첫 단추가 되고, 지구 환경을 구하는 지혜의 원천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구의 날, 지구의 미래를 구할 생명을 위해 우리는 또 숲태교를 준비하고 있다. 특별히 이중삼중 겹겹으로 소외된 ‘미혼모들을 위한 숲태교’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연간 발생하는 미혼모, 미혼부 3만여명 중에서 우리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미혼모들은 기껏해야 몇 백명도 안된다. 99%의 미혼모들은 새 생명을 낳는 과정에서 단 한번도 자연의 둥지를 접할 기회가 없는 것이다.

예전에는 1박2일 프로그램을 연간 10회로 구성했으나, 올해는 5회로 줄였다. 이것은 생명을 오로지 예산이라는 산술적인 숫자에 대입한 결과이다. 저출산이니 인구절벽이니 탁상공론만 하지 말고 지금 당장의 새 생명이라도 귀하게 대접하자. 그러자면 우선 생명들의 둥지, 인간 최초의 학교를 다시 숲에서 시작하는 것이 어떨까. 자연휴양림과 같은 훌륭한 둥지에 대해서는 임신부 쿼터제를 도입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면 예산은?’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정부는 생각보다 돈이 많기 때문이다.

<유영초 풀빛문화연대·(사)산림문화콘텐츠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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