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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민으로 사는 일상은 매일매일 새롭다. ‘신행정수도’의 우여곡절 논쟁을 거쳐 2007년 건설의 첫 삽을 뜬 지 불과 10년 만에 인구 30만명이 정주하게 된 이곳은 경이로운 ‘순간’ 도시이다. 최근에는 국회 분원 입지연구가 시작되고, 대통령 제2집무실 태스크포스(TF)도 구성되어 향후 세종시의 진화 양상에 관심이 더욱 집중되고 있다.

현재 건축전문가 대다수는 세종시에 대해 별로 좋은 소리를 안 한다. 건물 디자인에서부터 가로환경 디테일까지 긍정적 언급이 드물다. 도시계획가도 비슷해, 토지 이용은 물론 교통 및 주차 체계에 대해 아쉬워한다. 지표면적의 절반 이상이 공원녹지인 도시인데, 조경가 역시 오픈스페이스의 경관에서부터 바닥재질까지 흡족해하지 않는다. 이들의 불만에 공감하는가? 세종시 환경에 대해 어떤 근거로 설명하는 게 논리적으로도 설득력을 가질까?

국토교통부의 2017년 주거실태조사 결과에 의하면, 세종시에 대한 건축·도시계획·조경 전문가들의 부정적 의견에 비해 주민들의 주거환경에 대한 평균 만족도는 상대적으로 그리 낮지 않다. 공원녹지, 보행 안전, 치안, 주변 청결, 지역 유대 등과 같은 항목에서는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한다. 오히려 문화시설과 의료시설에 대해서 큰 아쉬움을 보인다. 특히 문화에 대한 요구가 충족되지 않고 있음을 분명히 표출하고 있다.

세종시를 처음 구상할 때, ‘세계적 문화도시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대규모의 국립박물관단지가 계획됐었다. 이에 대한 마스터플랜도 국제공모를 거쳐 2016년 말 선정되었다. 이후 개별 박물관의 건립 준비작업이 치열하게 이루어졌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도시건축박물관만 하더라도 몇 차례 초기 스터디와 콘텐츠 및 전시기획 기초연구가 있었지만, 적절한 후속작업은 미흡했다.

도시도 변하지만, 박물관 자체도 변하고, 전시 대상으로서의 도시건축 콘텐츠 역시 크게 변한다. 흔히 고지도, 고문서, 계획 초기 도면, 오래된 사진, 문헌, 모형 등이 도시건축박물관의 고전적인 콘텐츠로 여겨지지만, 이것으로 새로운 국립도시건축박물관을 채울 수 없다. 시대가 변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고전적이라 때론 새롭지 않다고 폄하되기도 하는 이 귀한 역사자료들 자체가 우리에게 별로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여러 모순적 이유로 우리에게는 획기적인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역사 전통뿐 아니라 일상의 도시건축 콘텐츠가 신기술과 만나, 신개념의 역동적이고 창의적인 도시건축박물관 내용으로 새롭게 대상화하지 않고서는 다른 해법이 현재 희박한 상황이다. 서울 성공회성당 앞의 도시건축박물관, 돈의문 박물관마을의 도시건축센터, 그리고 정동의 국토발전전시관보다 훨씬 더 심화, 진화한 방식으로 세종시의 국립도시건축박물관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기획을 위해, 이제껏 국립박물관단지 실행계획이 다소 늦어지고 있는 점이 역설적으로 다행일 수 있지만,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지점에 이르렀다.

건설속도에서는 전 세계 어디에도 뒤지지 않을 급속의 압축성장시대를 견뎌온 우리 사회가 이제는 차분히 우리 도시건축이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져왔는지, 그곳에서 우리가 지금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그래서 어떤 미래 삶의 모습으로 향해 가고 싶은지, 새삼 새로운 공부와 공론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 학습이 국립도시건축박물관의 실행 기반으로 작동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세계적인 명품 신도시, 국민통합과 균형발전의 친환경 도시, 상생과 도약의 지속가능 도시’ 등 세종시에 붙여진 공식 명칭이 여전히 공허하다. 국회 분원과 대통령 제2집무실 논의가 시작되고 있는 이즈음, 세종시와 우리 도시문화를 보다 풍요롭게 채워줄 국립박물관단지의 논의가 함께 구체화되길 바란다. 미국 워싱턴시가 자랑하는 그 도시의 정주성과 정체성은 행정, 사법, 입법의 기능과 함께 큰 축으로 작동하는 스미소니언 박물관군의 다양한 문화력을 기반으로 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박소현 건축도시공간연구소장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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