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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1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유력 대선후보들이 에너지정책 공약의 일환으로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취소 및 신규 원전 건설 금지를 제시했다. 국내 원자력계는 대안 없는 탈핵이라고 반발이 거세다. 독자들은 왜 신고리 5·6호기를 지어서는 안되는지 아래 가상 시나리오를 읽어본 뒤 판단해주시길 바란다.
신고리 5·6호기가 건설돼 운전을 개시한 2022년 여름 어느 날, 고리 2호기부터 신고리 6호기까지 같은 부지 안의 원전 9기에 짧은 시차를 두고 규모 6의 지진이 감지된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국내 원전에 적용된 원자로 자동정지 시스템이 원자로들을 급정지(trip)시킨다. 원자로 트립은 냉각수 계통의 압력 및 온도 변화라든지 펌프의 오동작 신호 등에 의해서도 일어난다. 이후 지진신호는 사이버공격에 의한 가짜 신호라는 것이 밝혀졌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불시 정지한 원자로는 노심특성과 안전점검 문제로 수일간 재가동을 못한다. 원전 9기의 1000만㎾ 발전용량이 일시에 사라진 고리지역을 중심으로 시작된 정전이 순식간에 전국으로 퍼져 국가적 대정전(blackout)에 빠진다.
원전 폭발이 가져오는 재앙과 혼란상을 실감나게 그린 영화 <판도라>의 한 장면.
2003년 8월 뉴욕 등 미국 동북부와 캐나다 일부 지역의 5000만명 이상을 3일간 암흑 속에 지내게 했던 블랙아웃에 근거해 2013년 내셔널지오그래픽이 방영한 가상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블랙아웃 첫째 날, 일부 비상전원으로 움직이는 것을 제외한, 전기로 움직이는 거의 대부분의 운송수단 및 기기들이 정지한다. 꺼진 신호등으로 인해 차량 사고가 급증하고, 도로는 심한 체증에 빠진다. 휴대폰은 곧 사용불능이 되어 사람들은 커뮤니케이션에 어려움이 생긴다. 경찰서, 소방서, 병원은 긴급 구조로 정신없다. 은행 등 금융시장도 심각한 타격을 받는다. 국가적 대재앙의 시작이다. 둘째 날, 수도 및 가스 공급이 끊기고, 냉장고의 음식은 상해간다. 마트나 편의점의 생수, 라면, 부탄가스, 통조림, 휴지 등은 곧 바닥이 난다. 몇 안되는 문 연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사느라 장사진이다. 사람들이 지쳐간다. 셋째 날, 단수로 먹을 물도, 화장실 변기 내릴 물도 없다. 얼마 남지 않은 마트나 편의점의 물과 식량 가격은 급등하고, 약탈과 범죄가 급증해 일부 지역에서는 폭동이 일어난다. 주변으로부터 전력 공급이 가능했던 2003년 미 동북부의 블랙아웃은 다행히 3일 만에 해결되었다. 주변 국가로부터 전력 공급을 받을 수 없는 한국의 블랙아웃은 3일 만에 해결될 수 없고, 10일까지도 갈 수 있다. 다수 원전의 불시 정지에 의한 블랙아웃은 한국을 주저앉게 만들 것이다.
이상의 시나리오는 원전 사이버공격에 대해 과거 필자가 참여한 연구과제에 근거한 내용이다. 국내 원자력 전문가들 중 일부는 이 같은 사고 발생 가능성을 알지만 아무도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으려 한다. 원전 추가 건설 논의에서 이러한 사고 및 후쿠시마 같은 원전 중대사고 가능성을 변수에 넣는다면 원전의 비용 대비 편익 계산은 지금과는 달라지고, 원자력은 더 이상 값싼 에너지원으로 여겨질 수 없다. 국가안보 차원에서라도 신규 원전 건설 대신 전력망 개선, 원자로 폐로, 재생가능에너지 개발, 에너지효율 개선, 전력저장장치 개발 등에 힘써야 한다.
강정민 | 미국 자연자원방어위원회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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