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수돗물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 특별·광역시 중에서 가장 요금이 저렴한 서울특별시의 수돗물 가격은 현재 1㎥에 360원이고, 수계기금이라는 상류지역 지원금까지 합쳐 530원으로 산정되고 있다. 서울시민은 가정에서 1인당 하루 평균 약 200ℓ의 수돗물을 사용하므로 한 달에 평균 6㎥를 쓰고, 약 3180원을 한 달 수도요금으로 지불하는 셈이 된다.

2014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수돗물 1㎥당 생산원가는 876.5원이고 평균요금은 666.9원이다. 우리 국민들이 평균적으로 지불하는 한 달 수도요금은 약 4000원인 셈이다. 한 달 동안 마시고, 샤워하고, 세탁하고, 음식물 만들고, 수세식 화장실 사용하고, 청소하는 모든 용도에 충분히 물을 사용하고 한 달에 4000원! 유명 커피점의 한 잔 커피값 정도다. 그렇게 보면 별 가치 없다. 물쓰듯 써도 될 것 같다.

그런데 수돗물은 그저 그 정도의 가치만을 지니고 있을까? 2007년 영국의 의학전문지 ‘브리티시 메디컬 저널’은 장티푸스, 콜레라 등 수인성 질병을 없앤 상하수도를 지난 160년 동안 의학 분야에서 이룬 가장 큰 성과로 선정했다. 상하수도의 보급은 지난 세기에 인간의 평균수명을 20여년 연장시켰다고 평가받기도 했다. 아프리카에서는 여성과 아이들이 물이 있는 곳을 찾아가, 깨끗하지도 않은 물을 길어오느라 종일을 소비한다. 개발에 대한 타당성 조사를 하는 방법에 지불의사(willing to pay)를 물어서 가치를 결정하는 방법이 있다. 아마 아프리카의 여성들이나 지난해 가뭄으로 제한급수를 경험한 보령댐 주변 주민들에게 지불의사를 물으면 한 달에 4000원보다 훨씬 많은 값이 나올 것이다. 조금 더 생각을 연장해 만약 지금 우리 집에 수돗물이 나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해 보면 수돗물의 가치는 결코 한 달에 4000원은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50여년간 집중 투자와 건설을 통해 95% 이상의 국민들이 가정에서 평균 4000원의 저렴한 가격으로 한 달간 물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시설을 확보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물은 국민에게 외면받고 있다. 세계 122개 국가를 놓고 유엔에서 발표한 국가별 수질지수 순위에서 세계 8위, 세계 물맛대회에서 7위에 선정됐지만, 시민들은 그렇게 인정하지 않는다.

서울시만 하더라도 수돗물은 공인된 정수과정을 거치고 체계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철저하게 관리되고, 300여개 항목에 걸쳐 엄격한 수질검사를 하는 등 품질검사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지만 신뢰도는 낮다. 그렇게 좋다면 당신이나 마시라는 냉소적인 반응이 돌아온다. 아마 이런 반응이 나오는 이유는 객관적인 숫자보다 개인이 느끼는 불안감에서 시작하는 주관적인 판단이 앞서기 때문일 것이다. 수돗물에 대한 불신으로 2009년 3300억원이던 먹는 샘물 시장은 6년 만에 6200억원으로 2배 가까이 성장했고 2020년에는 1조원 시장을 바라보고 있다. 제주에서 백두까지 생수 브랜드만 200개가 되면서 지하수는 고갈되고 페트병으로 인한 쓰레기 문제 역시 심각하다. 결국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우리와 후손들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매년 정수기나 생수 구매 등에 지출하는 사회적 비용은 2조원이 넘는다고 한다. 물값이 비싸기로 유명한 호주 시드니의 경우 시민 10명 중 6명가량이 수돗물을 직접 마실 뿐 아니라 환경보호를 위해 일부러 수돗물을 마시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얼마 전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 물연구원에서 오는 26일 수돗물의 안전성과 소통을 개선하는 주제로 국제회의를 개최한다는 초청장을 받았다. 수도사업자가 더 좋은 수돗물을 생산하고 공급하기 위해 국제회의를 개최해 외국의 경험, 기술과 정책을 수렴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수돗물에 대한 불신을 불식하려면 우선적으로는 수도사업자가 조류, 신종 유해물질, 수도시설의 노후화 등 안전한 물 공급을 위협하는 위험인자들을 사전에 파악하고 개선 방안을 시행해 소비자가 만족할 수 있는 품질의 수돗물을 공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국민들과의 소통을 통해 수돗물이 안전하고, 수돗물을 음용하는 것이 환경을 위한 첫걸음임을 알리는 것도 지속해야 한다. 국민들의 관심과 감독을 통해 수돗물에 대한 인식이 바뀌게 되면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도 감소될 것이다.

최승일 | 고려대 환경시스템공학과 교수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5/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