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가 찬밥 신세다. 이 제도를 만든 정부와 국회는 물론, 도입을 결사반대해왔던 기업들의 관심도 확 떨어진 분위기다. 외국에서는 인기스타 반열에 오른 이 제도가 우리나라에서는 흘러간 노래 취급을 받는 이유는 뭘까.

더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미세먼지, 녹조, 가습기 살균제, 폭염, 지진 공포에 시달리는 대한민국이라는 지뢰밭에서 배출권거래제는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인지도 모른다. 배출권을 사고판다고? 이 제도 안에서 기업들은 할당 배출권 범위만 넘지 않으면 탄소를 마음껏 배출할 수 있다. “이로써 너의 죄를 사하노라.” 정부는 베드로 성전의 건축기금 마련을 위해 면죄부를 발급했던 교황 레오 10세라도 된단 말인가? 대다수 국민들은 배출권거래제가 무엇인지, 왜 시행해야 하는지 잘 모른다.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투명하지 않게 운영해온 탓이다.

거래제가 관심 밖으로 밀려난 두 번째 이유로 이 제도가 너덜너덜한 누더기 상태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배출권거래제 성공을 위한 필수 요건 중 하나는 공정성이다. 공정성은 엄격한 배출권 할당과 공정한 시장 운영을 통해 보장된다. 하지만 할당 과정에서부터 정부는 기업논리에 포획돼 비상식적인 일을 벌이기 시작했다. 배출권 할당량을 5800만t이나 늘려주면서도 왜 그러는 것인지 설명도 근거 제시도 없었다. 그때는 이 일에 배후가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한참이 지나서야 ‘배출권 퍼주기’는 최경환, 안종범, 윤상직 등 당시 경제정책을 주무르던 ‘위스콘신 마피아’ 3인방의 합작품이라는 얘길 들을 수 있었다.

시민사회 일각의 우려와 비판이 있었음에도 이 제도의 도입을 적극 지지한 이유는 딱 한 가지였다. 산업계가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는 수준의 부담을 지지 않는 선에서 온실가스를 감축할 수 있도록 강제하는 수단으로는 총량제한 배출권거래제가 최선의 대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탄소세를 도입하는 것이 더 낫다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탄소세는 소득역진성과 감축 불확실성이 약점으로 지적된다. 그래서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배출권거래제가 산업과 비산업,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에 적용되어야 할 형평성 원리에 더 잘 들어맞는다고 확신했다.

그런데 그때 오판한 것이 있다. 정부든 기업이든 막나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본선 정도는 지킬 것이라는 믿음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배출권거래제는 시간이 흐를수록 떼쓰기, 편법, 비밀주의와 무원칙이 판치는 무대로 전락해가기 시작했다. 이러다간 무용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지만 이 제도를 무력화시킨 사람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건 그들이 내심 ‘배출권거래제 무력화’를 원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전경련 등은 친기업 언론과 전문가들을 동원해 배출권이 엄청나게 부족한 것처럼 엄살을 부려왔다. 이 태도는 과잉할당되었음이 명백하게 드러난 지금도 바뀌지 않고 있다. 물론 배출권이 부족한 것으로 판명된 기업들도 있다.

하지만 이들도 할당이 적어서인지 온실가스 감축 태만 때문인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할당을 부당하게 적게 받았다면 억울한 일이지만, 감축에 게을러서 배출권이 부족하다면 불이익을 감수하는 게 맞다. 이 모든 것에 대한 판단과 교통정리는 정보를 쥐고 있는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배출권거래제는 장점도 있지만 허점도 많은 제도이다. 나는 아직도 현재의 상황이 이 제도의 태생적인 한계 때문만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문제는 제도를 운영하는 정부의 태도이다. 온실가스를 줄이지 못하면서 공정성만 해치는 배출권거래제를 개선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면, 차라리 다른 대안을 찾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는가.

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시민환경연구소 소장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5/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