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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지역은 이중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수도권의 지역은 주로 대안의 가능성을 가진 공간으로, 비수도권의 지역은 저출산·고령화 등으로 쇠락하는 공간으로 표상된다. 그러면서 수도권의 인구는 다시 늘고 있다.

이런 문제는 비영리 민간단체 비중에서도 드러난다. 2018년 9월까지 행정안전부에 등록된 비영리 민간단체 총 1만2565개 중 서울과 경기, 인천에 등록된 단체가 5804개로 전체의 40.46%다. 그리고 비수도권의 단체들 중 상당수는 시·도청 소재지에 있고 군 단위에는 관변단체나 보훈단체를 제외하면 단체들이 거의 없다.

다양한 사업에 비슷한 사람들이 참여하는 딜레마는 수도권에서도 나타나지만, 비수도권에서는 그것이 더욱더 심하고 참여할 단체나 사람 자체를 찾기도 어렵다. 학연, 지연, 혈연 같은 연고주의가 여전히 강력한 비수도권에서는 자신을 드러내는 활동을 꺼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니 비수도권에서는 단체 하나 만드는 것이 아직도 인생을 걸어야 하는 작업이다.

이 와중에 마을 만들기, 사회적 경제, 공익활동 활성화를 내건 사업들이 관과 민에서 많이 진행되었다. 중간지원조직들도 많이 만들어졌고, 민관 협력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그 효과가 전혀 없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시민사회의 역량이 새로이 드러나고 강화되는 지역을 찾기는 여전히 어렵다. 

왜 그럴까? 최근 행정안전부가 추진하는 지역혁신사업의 틀을 보자. 목적은 ‘주민이 삶 속에서 느끼는 지역문제 해결을 위한 주민 주도의 새로운 실험과 상호학습·확산이 이루어지는 문제 해결 복합 플랫폼 운영’이다. 구체적인 사업 내용은 ‘혁신 경험 설계 및 공간 운영’ ‘공간 기반 혁신활동 지원’ ‘지역밀착 생활실험 지원’ ‘지역사회 혁신 저변 확대’ ‘혁신사례 오픈 아카이브 구축’이다.

혁신과 플랫폼이라는 단어가 부각되지만 이런 전략이 처음은 아니다. 공간거점과 대관, 교육 등을 통해 주민 참여를 촉진하고 주민들이 지역문제를 새롭게 발굴하고 해결하는 다양한 사례를 만든다는 전략은 전에도 있었다. 행정안전부-지방자치단체(민관협의회)-민간위탁운영기관으로 구성된 추진체계도 그리 새롭지 않다. 과거보다 조금 더 발전된 기법들이 사용되겠지만 ‘누가 참여하나’라는 궁금증이 생긴다.

그 점에서 아름다운재단이 2018년부터 시도하는 작은변화지원센터는 지역사회의 토대를 다지는 작업이다. 이 사업은 이미 능력을 가진 특정 개인이나 단체를 통해 지역을 바꾸는 방식(이미 많이 써온 방식!)보다, 개별화된 주민이나 활동가들이 네트워크를 통해 만나고 지역의제 구성 이전에 지역사회와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마련한다.

지역 활성화와 관련된 많은 사업들이 놓치고 있는 점은 지역에 대한 이해다. 지역에 대한 주민의 배경지식이나 경험치가 다르다는 점을 전제하고 서로 맞춰가는 과정이 먼저 필요하다. 몇몇 활동가나 전문가가 주도하지 않고 주민 구성의 차이와 다양성을 반영하는 사업들이 있어야 변화가 가능하다. 또한 활동의 성과가 몇몇 개인이나 단체에 독점되지 않고 지역에 축적되려면 새로운 주체들이 계속 등장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 사업이 성격상 ‘성과주의’가 강요되고 그 성과가 주로 양적 지표로 측정돼 사람에 대한 투자를 꺼린다면, 민간의 사업은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정부 사업이 전국의 ‘보편성’에서 자유롭지 않다면, 민간 사업은 지역의 특수성을 감안한 시간과 공간의 선택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지리산권의 작은변화지원센터는 새로운 활동주체를 찾기 위해 지리산권 5개 시·군에 1명씩 5명의 지역 협력 파트너를 두고 네트워크를 만들어왔다. 그리고 주체들의 역량 강화를 위해 지역조건에 맞게 네트워크를 구성하거나 주민들이 첫발을 떼도록 도울 작은 사업들을 지원했다. 사업의 규모나 수보다 이런 섬세한 지원이 지역을 조금씩 복원할 수 있다. 지금 단계에서 혁신은 지역의 끊어진 관계를 복원하고 신뢰를 회복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하승우 풀뿌리자치연구소 더이음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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