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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 세 포기를 사다 김치를 담갔다. 배추 무게가 총 4㎏ 정도. 그런데 김치를 담그고 나니  다듬은 채소와 부속물이 합쳐져 음식물 쓰레기 1㎏이 나온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2013년 음식물 쓰레기 종량제 시험사업 지구가 되어 RFID(Radio Frequency Identification·무선주파수 인증시스템)를 도입한 아파트다. 말은 어렵지만 음식물 쓰레기 수거통 단말기에 가구별 종량제카드를 갖다 대면 자동 인식되면서 발생량을 자동 측정해 매달 정산이 되는 시스템이다. 

먹는 이야기가 과하게 넘치는 세상이다. 하지만 음식은 생산부터 지긋지긋한 반복노동을 거쳐 종당에는 ‘음식 쓰레기’라는 대면하기 싫은 실체이기도 하다. 이제 여름 복판에 들어섰다. 집집마다 음식물 쓰레기 처리로 골머리를 앓을 테고, 음식물 쓰레기 봉지를 들고 죄지은 사람처럼 엘리베이터 구석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실제로 가사노동 스트레스 중에서 음식물 쓰레기 처리가 가장 높은 강도를 기록한다. 눈앞에 차려진 밥상은 식욕을 돌게 하지만 수챗구멍에 남은 이물들은 외면하고 싶다. 김치도 그냥 사다 먹었으면 이렇게 쓰레기를 대면하지 않았을 것 같아 후회가 들었다. 그러나 내가 버리지 않아도 결국 어딘가에는 내가 먹은 만큼의 음식 쓰레기가 버려졌을 것이다. 그 음식 쓰레기를 대면하지 않는 비용을 매식비로 대신 지불하는 것일 뿐. 먹는 삶이 곧 버리는 삶이다. 

한국은 2015년까지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고 남은 폐수를 버려왔고 2016년부터 해양투기가 전면 금지되었다. 2006년 발효된 런던의정서는 산업폐기물의 해양배출을 국제적으로 금지하자는 결의다. 한국도 런던협약 방향에 맞춰 폐기물 정책을 짜왔다. 그 과정에서 음식물 쓰레기 정액제에서 종량제로 전환했고, 직매립이나 소각 방법에서 재활용 처리 비율을 높여왔다. 그래서 2010년 이후에는 95% 이상이 재활용을 한다. 주로 사료와 퇴비로 재활용하고 바이오가스 전환도 포함한다. 내다 버리는 입장에서야 그나마 재활용이 된다니 어느 정도 마음이 놓이기도 한다.  

그런데 음식물 쓰레기를 재활용한 ‘잔반사료’가 결국 발목을 잡는 형국이다. 현재 음식물 쓰레기 11% 정도는 가축들이 해결해 준다. 하지만 이 잔반사료가 ‘아프리카돼지열병’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심각한 고민을 던져주고 있다. 전체 양돈업에서 잔반사료를 먹여 키우는 돼지는 1% 정도지만 이 돼지들은 음식물 쓰레기 해결사이기도 했던 셈이다. 인간 먹거리의 출처는 이리저리 뒤섞여 있다. 특히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한 국가의 햄이나 순대와 같은 육가공품을 먹고 난 뒤 잔반으로 버려지는 과정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에 감염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그런데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중국 전역에 퍼지더니 결국 5월31일 북한에서도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했다. 이는 ‘한반도’에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가 들어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은 한 번 걸리면 그냥 모든 것이 끝이다. 구제역처럼 살처분 이후라는 것도 없다. 업을 아예 접어야 한다. 양돈업뿐만 아니라 연관 유통산업과 외식업까지 관련 산업들이 도미노로 무너질 수 있다. 정부도 현재 최고 방역 단계인 ‘심각’단계로 규정하고 있고, 돼지의 잔반사료 급여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에 감염된 멧돼지를 막는 일도 엄중하지만, 먹고 버리는 문제만큼은 오로지 인간이 책임져야 한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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