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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조3000억원! 환경부가 2020년 미세먼지 관련 예산으로 편성한 액수다. 올해보다 35% 늘어난 사상 최대 규모다. 미세먼지를 개선하겠다는 의지에 동의한다. 오히려 미세먼지로 인한 고통과 불편을 생각하면 더 많아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예산의 세부내역에 이르러서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예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1조5300억원을 전기차 구입 지원, 경유차 조기 폐차 지원에 배정했기 때문이다. “친환경차인 전기차를 보급하고 노후된 경유차의 폐차를 유도하겠다는 정책이 왜 문제가 되느냐”고 반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기차는 미세먼지를 줄일 수 없고 경유차는 미세먼지의 주범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자동차로부터 발생되는 미세먼지의 약 90%는 비배기가스가 발생원이다. 자동차 미세먼지는 배기통이 아닌 타이어, 브레이크, 도로포장, 도로재비산먼지가 원인이다. 연구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으나 결과는 유사하다. 연구뿐 아니라 유럽환경청(EEA), 미국환경부(US EPA), 유엔유럽경제위원회(UNECE) 등의 결과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독일환경청에서는 향후 자동차 미세먼지 중 비배기가스가 차지하는 비율을 93%까지 예측하고 있다. 자동차 배기가스 처리기술의 발전 때문이다.
그래도 전기차가 디젤차보다 최소한 10%는 미세먼지를 더 적게 발생시키지 않을까? 그것도 아니다. 전기차의 배터리 무게 때문이다. 시중에 나와 있는 전기차는 같은 브랜드의 차종 중 가솔린차 대비 300㎏ 정도 더 무겁다. 중량이 더 무거우니 타이어, 브레이크 등에 더 큰 부하를 줘서 배기가스 저감량을 상쇄하고 마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전기차가 왜 미세먼지의 구세주가 되었을까? 그리고 경유차는 왜 낙인찍혔을까? 정확히는 알 수 없다. 짐작하건대, 미세먼지 측정방식 때문이다. 환경부가 인용하는 미세먼지 배출량 통계는 배기가스만을 대상으로 측정한다. 배기가스만을 대상으로 했으니 내연기관차는 높게 나오고 전기차는 없는 것이다. 한때 고등어가 미세먼지의 주범이라 해서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것과 판박이다.
원인에 대한 해석이 다르니 우리나라의 미세먼지 대책 또한 유럽이나 미국의 그것과 사뭇 다를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교통부문의 공기질 정책에서는 자동차를 줄이고 녹색수단을 장려한다. 세계보건기구(WHO),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말이다. 올해 영국 정부에서는 향후 20년간 약 25조원을 자전거 활성화에 투입한다는 대책을 발표했다. 그 대책의 이름은 다름 아닌 ‘맑은 공기전략’이다. 대책에 전기차는 없다. 문제는 같은데 방법은 전혀 다른 것이다.
맑은 공기를 위해 외국에서는 자동차를 줄이자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앞장서 자동차를 구입하는 비용까지 지원하겠다고 한다. 다른 나라와 국제기구들이 자전거 활성화에 거액을 투자하는 반면 우리나라의 주무부처 자전거 예산은 10억원이 안된다. 전기차 지원예산의 0.07%이다. 미세먼지 정책의 심각한 오류이며, 방치를 넘어 고의적 폐기에 가깝다고 생각된다.
산업적 측면에서 전기차가 대책으로 나왔는지 모르겠으나 분명한 것은 전기차로는 미세먼지를 줄일 수 없다는 것이다. 교통부문 미세먼지를 감축하고자 한다면 자동차 이용을 줄이고, 자전거와 대중교통을 활성화하도록 정책과 예산을 집중하는게 맞다. 그것이 곧 미세먼지의 원인과 대책을 하나로 연결하는 것이며, 지속 가능하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재영 | 대전세종연구원 선임연구위원·교통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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