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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사우디아라비아 ‘원전 세일즈’ 방문 일정과 ‘국가적 총력 결집’ 입장이 발표됐다. 관가에서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과 대통령의 사우디 방문설까지 나오고 있다. 위헌 논란까지 일으킨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원전의 이면합의조차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탈원전 탓에 사우디 원전 계약을 놓쳤다’는 원자력계의 공세에 떠밀린 모습이다.

UAE 원전 수출을 한번 되돌아보자. 2009년 이명박 정부의 UAE 원전 계약은 경쟁국 대비 절반 수준 덤핑가격, 국내 금융기관의 자기자본까지 바닥낸 28년간 100억달러 저리 차관, 군부대 파견과 각종 이면합의로 한국을 중동의 ‘호구’로 만들었다. 이런 터무니없는 지원은 향후 정상적 조건에 후속 원전을 수출할 경우 정당화될 수도 있다. 그러나 UAE는 지난해 발표한 2050년까지 장기에너지 계획에서 추가 원전 건설이 없음을 확인했다. 결국 원전 계약을 내세워 진짜 목표였던 한국의 군사원조를 끌어낸 UAE의 전략에 정부가 철저히 놀아난 셈이다.

사우디는 벌써부터 한국 측에 UAE 원전 수준의 ‘선물’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UAE와 마찬가지로 원전 수주를 에너지 확보가 아닌 다른 목적의 활용 수단으로 삼겠다는 의도도 선명하다. 수니파 맹주인 사우디는 적대관계의 시아파 맹주 이란의 우라늄 농축에 대항해 우라늄 농축으로 맞불을 놓겠다고 밝혀왔다. 원전 수주전은 우라늄 농축의 협상수단일 뿐 원전 자체가 관심사항이 아니다. 핵확산 우려를 낳는 우라늄 농축은 원자력협정을 추진하는 국가의 동의가 절대적인데, 이런 결정을 할 수 있는 국가는 미국, 러시아, 중국 정도다. 실제로 사우디는 이들과 물밑협상을 진행해왔다. 이 때문에 한전조차 이미 지난해 초 사우디를 포기했다.또 다른 문제는 시리아 내전 등 격화되는 수니파와 시아파 간 분쟁이다. 우라늄 농축을 추진하는 사우디의 원전 수주전에 뛰어들 경우 성사 여부와 무관하게 이란의 반발이 우려된다.

이란은 최근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이란 선수단에 대한 스마트폰 지급 금지 조치만으로도 국가적 차원에서 반발했다. 이란은 가스 매장량 세계 1위, 석유 매장량 세계 4위의 나라로 이미 한국가스공사 및 국내 정유사들과 다수의 에너지 수출 계약을 체결했거나 협상 중이다. 사우디 원전 수주전은 UAE 사례처럼 빈 쭉정이 계약에 호구가 되는 문제를 넘어 중동분쟁에 휘말려 국가 에너지 수급까지 타격을 입힐 수 있다.

호구 계약이든, 중동분쟁이든 ‘원전만 팔면 된다’는 원자력계의 선동은 정부와 국민을 오도하고 국가경제에 큰 손실을 입힌다. ‘사우디 원전 수출에 국가 총력을 결집한다’는 정부의 잘못된 정책 설정은 그 성사 여부를 떠나 이명박 정부의 과오를 확대 재생산하게 만든다. 정부는 떼쓰는 원자력계를 어설프게 달랠 것이 아니라, 가짜뉴스에 대한 교차검증과 정부를 오도하는 세력에 대한 준엄한 조치로 국정을 바로 세워야 한다.

<석광훈 | 녹색연합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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