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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기고]촛불을 다시 보며

opinionX 2019. 9. 3. 10:59

대학생들이 다시 촛불을 드는 것을 보며 만감이 교차한다. 박근혜 퇴진운동을 벌이며 들었던 촛불은 박 전 대통령의 밀실 측근이라는 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받은 성적 특혜라는 반칙 행위에 대한 분노가 단초가 됐다. 이후 광화문의 촛불은 전국으로 들불처럼 퍼졌고 결국 박근혜 정권을 몰락시켰다.

대학생들이 이번에 들고 있는 촛불은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딸의 대학과 대학원 입학, 장학금 수혜 등의 과정에서 나타난 반칙과 특혜와 편법에 분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보수 우파는 기득권층과 동의어로 간주됐고 그렇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기피했다. 반면에 진보 좌파는 정의의 화신으로 자처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기회는 공평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문재인 정부의 아이콘이며 진보 좌파의 대표주자인 조국 후보자는 그동안 각종 매체와 연설을 통해 이를 설파했고 많은 국민이 이에 열광했던 것이 사실이다.

서울대 학생회관 앞에서 8월28일밤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주최의 ‘제 2차 조국교수 STOP ! 서울대인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다. 서울대 학생들은 지난 23일에도 같은 장소에서 촛불집회를 열었다. 우철훈 선임기자

그런데 조국 후보자는 앞에서는 정의를 외치고 뒤에서는 기득권층으로서 온갖 편법과 특혜를 향유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조국 후보자 딸이 고교시절 2주간의 인턴으로 전문 학술지에 제1저자로 이름을 올리고, 무시험으로 대학과 대학원에 진학하고 장학금을 받은 사실들은 일반 국민의 눈높이에서 보면 도저히 따라할 수 없는 신기(神技)에 가깝다. 

이번에 또다시 대학생들이 들고 있는 촛불도 분노의 촛불이다. 이건 보수와 진보 간의 이념 투쟁의 문제가 아니다. 이건 정의냐, 불의냐의 문제다. 모든 철학자들이 합의한 정의(正義)에 대한 정의(定意)는 없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내세운 대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게’ 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모두가 용이 될 필요가 없다. 개천에서 붕어나 가재로 살아도 행복한 사회를 만들자”는 조국 후보자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사람은 누구나 돈과 명예와 권력을 얻고 싶어 한다. 이들 중 하나라도 얻는 것이 용이 되는 것이다. 이를 얻기 위해 밤잠을 줄이며 공부하고 일을 한다. 그런데 개천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붕어나 가재로만 살라면 행복할 수 있겠는가. 특히나 이미 용이 된 기득권층들이 편법과 특혜와 반칙을 하면서 대를 이어가며 더욱더 많은 돈과 큰 명예와 권력을 얻는 사회라면 국민은 절망하고 분노하지 않겠는가. 촛불이 주장하는 것은 강남의 양재천뿐만 아니라 어느 개천이든 용이 나올 수 있도록 기회를 평등하게 하고 과정을 공정하게 해 달라는 거다. 그게 정의로운 사회다.

그동안 진보 좌파는 촛불정신을 자신들의 전유물로 내세웠다. 그러나 촛불은 진영논리와 상관없이 기득권층이 정의롭지 못할 때 타오른다. 학생들이 지금 들고 있는 촛불은 이들이 가장 민감해하는 조국 후보자 딸의 입시와 장학금과 관련한 불의에 항의하는 촛불이다. 그러나 이 촛불을 일부 언론과 야당의 선동에 의한 거라는 식으로 폄훼하고 조롱한다면, 이 촛불은 캠퍼스를 넘어 광화문으로 번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법무부를 영어로 정의부(Ministry of Justice)라고 한다. 우리나라 법무부의 영어 표기도 이렇게 되어 있다. 조국 후보자는 정의 구현을 책임지는 정의부 장관 후보자다. 조국 본인이 정의롭지 않은데 어떻게 조국의 정의를 책임질 수 있는지 국민 다수는 믿을 수 없어 한다. 

지금이야말로 문재인 정권이 핵심가치로 내세운 평등·공정·정의를 바로 세울 때다. 그걸 대통령이 못하면 검찰이 해야 하고, 검찰도 못하면 국민이 할 것이다. 개인 조국(曺國)의 운명과 함께 우리 조국(祖國)의 운명이 갈리는 기로에 있다. 촛불을 다시 보며 교차하는 만감 중에 떠오른 단상이다.

<이현훈 | 강원대 국제무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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