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지난 11월25일 발표된 통계청의 2019 사회조사 결과를 보면 노력을 통해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22.7%로 10년 전보다 14.9%나 떨어졌다. 안타까운 일이다. 특성화고 직업교육 업그레이드를 통한 계층 이동성 제고 방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특성화고에는 일반고에 비해 사회·경제적으로 어려운 형편의 학생들이 많이 진학한다. 그러므로 이들이 제대로 된 직업교육을 통하여 취업 역량을 갖추고 이를 디딤돌로 하여 맹자께서 말씀하신 항산(恒産)의 길로 나설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국가의 주요한 책무라고 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직업교육만큼은 국가가 책임지겠다면서 다양한 일·학습 병행제 및 선취업 후진학 관련 프로그램들을 추진하고 있다. 문제는 일반고에 비해 직업교육을 수행하는 특성화고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획기적인 개선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기회균등 및 공정성 측면을 강조하며 일반고 역량 강화를 위해 자사고, 국제고, 외고 등을 일반고로 전환하겠다는 ‘고교 서열화 해소 방안’을 발표했다. 일반고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향후 5년간 2조2000억원 규모의 예산을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중등교육의 한 축인 직업교육을 담당하는 특성화고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가 없다. 특성화고에 미칠 영향 등에 대한 고려 없이 일반고 중심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학령인구 감소와 맞물려 중등교육 생태계를 더욱 황폐하게 만들 수 있다.

일반고에만 서열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직업교육에도 서열이 있다. 2018년 기준, ‘직업교육 특목고’인 46개 마이스터고(학생 수 1만8105명)와 490개 일반 특성화고(학생 수 25만2260명)가 직업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고교 서열화 문제로 특목고가 폐지돼야 한다면 직업교육의 특목고 문제도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마이스터고의 경우 교원 1인당 학생 수는 6.6명이고 교육비는 물론 기숙사비까지 제공된다. 이들은 졸업 후 주로 대기업에 취업하게 된다. 이에 비해 특성화고는 교원 1인당 학생 수가 9.8명이며 졸업 후 중소기업에 취업하게 된다. 그나마 잦은 정책의 변화로 특성화고는 취업과 진학 사이를 갈팡질팡하며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채 취업률까지 극도로 하락하고 있다. 그리하여 일반고 및 마이스터고 아래 삼류 학교라는 주홍글씨를 달고 낙인효과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마이스터고를 폐지하자는 주장을 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경쟁력 강화를 위해 일반고를 지원하는 것처럼 특성화고에도 일반고나 마이스터고 수준의 지원을 해달라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적극 추진하고 있는 도제교육을 더욱 확충하여 특성화고를 지역 산업과 연계시켜 취업 및 창업에 특화된 ‘특성화 도제학교’로 새롭게 브랜딩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맹목적 대학진학을 위한 일반고 선호 현상도 줄이고 인력난을 겪는 중소기업이 지역의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개천에서 용이 나오지 않는다고 걱정인데 개천은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용타령을 하기보다는 우선 개천을 복원하여 잉어나 이무기가 자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1세기 개천의 하나는 특성화고라고 믿는다. 노후한 실습장비 교체 및 지능정보기술 보급, 선도적 에듀테크 도입으로 특성화고를 마이스터고 못지않은 ‘특성화 도제학교’, 4차 산업혁명의 기수로 육성하자. 어려운 환경의 아이들이 취업과 창업을 통해 등용문에 오르고 용이 되어 나르는 새로운 파천황(破天荒)을 이루게 할 수는 없을까.

<한석수 | 재능고 교장·전 한국교육학술정보원장>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