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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말이면 학교가 겨울방학에 들어간다. 아침에 교실로 들어선 선희의 손에 핫팩이 들려있었다. 방학 특강을 홍보하러 나온 학원 관계자에게 받았다고 했다. 아이들은 방학을 무조건 좋아할 것 같지만 학원을 더 많이 다녀야 해서 싫어하는 경우도 꽤 있다. 방학이 본래의 의미대로 공부를 내려놓고 인생을 풍성하게 해줄 취미를 키우는 시간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교육 선진국인 북유럽의 방학은 어떨까? 

핀란드는 사교육의 개념이 없는 나라답게 방학 동안 다음 학년 공부를 선행하는 일이 없다. 아이들은 스키, 스케이팅, 수영, 카누 등 다양한 체험활동을 한다. 부모가 직장이 있어 돌봐주지 못하면 지자체, 종교단체에서 주관하는 캠프에 참가하는데 비용이 저렴하다. 저소득층은 정부의 지원금으로 여행 체험이 가능하다. 지자체, 정부에서는 부모의 소득에 따른 불공평이 학생의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노력을 기울인다. 핀란드는 OECD 국가 중 학교 수업시수가 가장 적은데도 PISA(국제 학업성취도비교연구)에서 높은 학업성취도를 거둬 많이 놀아도 실력을 갖출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우리나라도 공교육의 천국이라 불리는 북유럽 3국에 매년 탐방단을 꾸려 배우러 가고 있지만 교육 혁신의 비결이 학교 안에 있을까? 

공교육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데에는 우리나라와 다른 노동구조가 있다. 노르웨이는 최저임금이 없다. 법으로 최저임금을 정하면 그것만 주면 된다는 것으로 악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90%가 노조에 가입되어 있어 노사협상을 통해 임금을 정하고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임금 차이가 크지 않다. 비정규직은 자유로운 시간을 얻을 수 있어서 선택하고 정규직은 상대적으로 조금 더 많은 연봉과 승진의 기회를 얻을 수 있어서 선택한다는 것을 보면 이 나라에서는 차별이 보이지 않는다. 초·중·고졸에 따라 임금이 다르지만 그 차이가 크지 않다.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부당한 차별을 받지 않기 때문에 대학이 무상교육이어도 굳이 진학하지 않는다. 직업을 잃을 경우, 개인이 감당할 고용불안과 위태로움을 사회안전망이 함께 받쳐주어 4년간 실업급여를 지급한다. 위험을 외주화하여 비정규직에게 떠맡기고 임금, 사회적 지위, 각종 처우에서 정규직과 차별을 두며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는 우리와 사뭇 다르다. 대학교수보다 배관공의 월급이 더 많다는 노르웨이처럼 우리도 직업의 차별이 없고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는 사회가 된다면 어떨까? 대다수가 들러리가 되는 입시로 인해 대부분이 엎드려 자는 교실 붕괴 장면쯤은 사라질 것이다. 

유명한 대학을 나오거나 ‘사’자 들어가는 직업을 가진다 해도 부와 명예가 보장되지 않는 시대에 당도했다. 개인파산을 신청한 직업군 2위가 의사, 4위가 한의사, 5위가 치과의사, 취직을 못하는 변호사가 10명 중 4명이라는 통계가 이미 5년 전에 발표되었다. 가방 속에 컵라면을 남기고 간 구의역 김군, 제주도 생수공장 현장실습생 이군,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김용균씨와 같은 억울한 죽음이 계속되고 있다. 어느 모로 보나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된다는 문제의식이 턱 끝까지 차올랐는데도 좀처럼 사회는 움직이지 않아 보인다. 정시를 확대하는 것이 공정하냐 입시제도에만 매달릴 뿐이다.    

촘촘하게 짜인 학원 스케줄로 인해 방학이 기다려지지 않는다는 아이들이 안쓰럽다.

<위지영 서울 신남성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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