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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캐나다 엘마이라 마을에서 고등학생 2명이 난동을 부린 혐의로 체포됐다. 당시 판사는 피해자들과 가해학생들이 대면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는 보호관찰관의 의견을 받아들였고 가해학생들은 피해자들을 찾아가 용서를 구하고 합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결과 놀랍게도 피해자인 주민들에게는 심리적 안정을 가져다주었고 가해학생들은 마을의 구성원이 되어 어울려 살아갈 수 있었다.

법은 사회 정의를 구현하는 수단이다. 현재 우리 사회의 사법적 정의는 가해자에게 피해자가 받은 만큼의 피해를 입힘으로써 균형을 이룰 수 있다는 응보적 정의다. 그러한 연유에 오랜 세월 학교 현장에서도 생활지도라는 명분으로 응보적 가치를 적용해왔다.

하지만 응보적 생활지도에서 가해자 처벌에 무게를 두면서 피해자는 소외되고 회복될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했다. 오히려 상호 관계 악화로 불필요한 갈등과 분쟁을 야기하는 문제를 떠안았다.

이에 대한 대안적 가치로 새롭게 등장한 것이 회복적 정의다. 누가 피해를 입었고 피해를 회복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에 중심을 두고 있다. 지금까지의 학생 생활지도가 징계나 벌로써 죗값을 치르게 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면, 회복적 생활교육은 갈등을 오히려 배움과 성장의 기회로 삼아 당사자와 공동체의 피해와 관계를 회복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실제 영국의 헐시티는 2008년 한 초등학교에서의 회복적 생활교육을 시작으로 시청, 경찰, 사법기관까지 확산되어 도시 전체가 회복적 도시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2011년 겨울, 대구에서는 학교폭력에 시달리던 중학생이 스스로 생의 끈을 놓아버린 실로 충격적이고 가슴 아픈 사건이 있었다. 대구시교육청은 어린 생명들을 지켜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강력한 학교폭력종합대책을 만들어 시행했다. 피해학생에 대한 보호는 물론 가해학생에 대한 엄격한 선도 조치 실시와 조치 사항의 학교생활기록부 기재를 정부에 건의하여 관철시켰다. 이후 학교폭력이 각종 지표에서 획기적으로 개선되는 성과를 얻었다.

그 후 6년의 시간이 지났고, 학교 현장도 많이 변했다. 학교 현장에서는 피해학생에 대한 진정한 회복보다 가해학생에게 부과되는 조치의 무게를 재심이나 소송과 같은 사법적 저울로 가늠해보려는 갈등과 분쟁이 비등하고 있다. 게다가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학교생활기록부 기재라는 행정적 조치가 오히려 기재를 막아보려는 각종 민원 제기와 항의의 요인이 되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이제는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대구시교육청은 회복적 가치에 충실하고 갈등 당사자 간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피해에 대한 완전하고도 궁극적인 복구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학교폭력 피해로 인한 상처는 가해학생에 대한 응보적 조치로써 아무는 것이 아니다. 피해의 원천인 갈등을 해소하고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관계가 회복될 때에야 비로소 치유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처벌보다 관계 회복에 초점을 맞춰 학교폭력에 대응해야 한다. 학생과 학부모의 동의를 전제로 학교폭력 피해학생과 가해학생에게 관계 회복 프로그램을 적용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함으로써 진정한 피해가 회복되도록 추구해야 한다.

학교는 학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성장하는 법도 배우는 곳이다. 학교폭력은 관계 갈등에 대처하는 방식이 서툴거나 잘못된 방식으로 해결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가해학생에 대한 처벌이 능사는 아니다. 죄는 또 다른 죄를 낳을 수 있다. 따라서 회복적 생활교육을 통해 가해학생과 피해학생이 관계 갈등을 현명하게 해결하며 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및 시행령’을 개정해야 할 것이다.

<우동기 대구시교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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