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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 전, 대한민국에 공무원노조를 만들어 보자고 7명의 공무원이 처음 노동상담소로 찾아왔다. 첫만남이어서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저녁밥을 샀다. 헤어지려고 하는데 서울의 한 구청 공무원이 물었다. “앞으로 공무원들은 몇천명이나 해직을 당할까요?”

내가 답했다. “전교조가 2000명이나 해직당하면서 길을 잘 닦았으니까… 훨씬 적게 해직당하겠죠.” 웃으며 나눈 대화였지만 사실 매우 가슴 아픈 일이다. 공무원노조를 설립하고 합법화되기까지 징계받은 공무원은 3000명가량이나 된다. 파면·해임된 공무원은 내 기억으로 약 550명이다. 화물연대의 파업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은 “불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지만 지금까지 노동자들은 불법을 통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만 활동했다면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교사노조와 공무원노조가 없는 미개한 사회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예년보다 기온이 10도 가까이 내려갔다는 추운 겨울 날, 지방 소도시에 들를 일이 있었다. 연세가 많은 여자 어르신이 길가 주차장 관리인이었는데, 바람막이 하나 없이 길바닥에 놓여 있는 허름한 의자가 시설의 전부였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낡은 오버코트 위에 목도리를 두 개나 칭칭 감고 양쪽 팔에 토시를 두른 모습이 마치 지리산 빨치산이 엄동설한에 추위를 견디기 위해 닥치는 대로 옷가지를 걸친 모습처럼 보여 마음이 아팠다.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이 바람막이 하나 없는 길거리에서 몇 시간이나 세찬 바람을 맞으며 서 있어야 하는 일자리가 21세기 문명사회에서 어떻게 가능할까?

저녁에 만난 친구에게 그런 얘기를 했더니, 세상 이치를 나보다 먼저 깨우친 친구가 말했다. “그분은 그 일자리라도 있으니 그나마 형편이 나은 거야. 쪽방에서 하루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노인들에 비하면….” 그 어르신보다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노인이 있으니 그 어르신의 노동조건을 개선할 필요가 없는 것일까? 노동조건을 개선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쪽방 노인들과의 차별을 더욱 크게 만드는 것이어서 정당하지 않고 사회에 해로운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사회적 약자의 권리 주장을 억압하는 가장 비겁한 수단은 그 약자보다 더 취약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내세워 그 약자의 주장을 이기적 행위처럼 몰아붙이는 것이다. 그 비난하는 사람이 사회적 약자보다 더 우월한 지위에 있는 경우에는 더욱 비겁한 짓이 아닐 수 없다.

윤석열 정부가 화물연대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해 “노동시장 이중구조에 시달리는 저임금 노동자”를 고통스럽게 할 것이라며 비난하는 것 역시 그와 유사한 주장에 불과하다. 정작 저임금 노동자를 위해서 한 일이 뚜렷하게 없으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은 더욱 설득력이 없다. 화물운송료 인상의 부담을 저임금 노동자 임금을 삭감함으로써 만회하려는 기업의 행태를 비난하는 것이 오히려 사회에 유익한 시각이다. 헌법의 노동3권 중 ‘단체행동권’이란 노동자들이 파업을 함으로써 경제적 손실을 발생시킬 수 있는 권리다. 한국은 그러한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노동교육을 학교에서 가장 하지 않고 있는 나라에 속한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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