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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화석연료와 자본주의를 통해 지구 생태계에 압도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모자라 스스로의 생존마저 위협할 지경에 이르렀다. 인류는 석탄과 석유를 먹고, 시멘트 건물만 있으면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결국 생태계의 일원이기 때문에 생물다양성이 붕괴된 지구에서는 생존할 수 없다. 이 당연한 사실을 우리는 곧잘 잊는다.

지구생명보고서를 보면 지난 50년간 지구상 생물종 개체수는 평균 69% 감소했다. 종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생물다양성의 가장 큰 위협 요인은 서식지의 손실과 훼손이다. 하지만 앞으로 생물다양성에 닥쳐올 더 심각한 문제는 바로 기후위기다. 서식지의 손실로 인해 생태계의 회복력이 크게 상실된 상황에서 폭염, 화재, 가뭄, 홍수 등 극한 기후 현상으로 인한 충격은 생물다양성의 붕괴를 앞당기는 치명타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기후위기를 맞서기 위한 해법 중 하나는 생물다양성을 보전하는 것이다. 더 많은 숲과 바다, 그리고 강을 보호해서 생태계의 회복력을 높여야 기후변화로 인한 영향과 충격을 완화하고 적응할 수 있다. 국제사회는 더 이상의 자연 손실을 멈추고 더 많은 자연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개념의 ‘네이처 포지티브(Nature Positive)’를 글로벌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자연의 손실을 멈추는 일은 쉽지 않다. 다양한 토지 이용 방식이 서로 경합할 때 자연을 보전하는 것은 경제성이 가장 낮기 때문이다. 지난 40년간 한국의 지목별 변화를 살펴보면 2641㎢의 숲이 사라지고 1849㎢의 밭, 1679㎢의 논이 사라졌다. 

대신 같은 기간 동안 도로 면적이 2022㎢ 증가하고, 건물을 지을 수 있는 대지가 1570㎢ 증가했다. 한 시간마다 축구장 면적 하나만큼의 숲이 사라지고 도로가 생긴 꼴이다. 

숲과 농경지가 사라진 자리에는 산새들도 사라졌다. 최창용 서울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1997년 이후 20년 동안 전국적으로 청호반새의 출현율은 95% 감소했다. 과거 흔히 번식하던 노랑때까치, 흰눈썹황금새, 멧새류 등의 조류도 심각하게 감소했다. 사라진 것이 비단 새들만은 아닐 것이다. 숲과 습지에서 살아가던 수많은 삵, 개구리 그리고 벌들도 함께 갈 곳을 잃었다. 

한국에서 경제 논리를 넘어서 자연의 총량적 손실의 속도를 늦추려면 자연자원총량제를 통한 강력한 토지이용계획이 필수적이다. 생물다양성의 손실을 단계적으로 저감하고 상쇄하는 방식의 총량제는 자연 손실을 멈추기 위한 첫걸음이며 미국·독일 등 37개국에서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은 자연자원총량제도가 없고, 생물다양성의 총량 손실을 제대로 평가해본 적도 없다.

캐나다 몬트리올에서는 ‘자연을 위한 파리협약’이라고 불리는 15차 유엔 생물다양성 당사국총회가 열리고 있다. 이번 당사국총회에서는 2030년까지 ‘네이처 포지티브’로의 전환을 위해 보호구역 지정 및 재정 지원 등의 구체적인 목표를 논의할 예정이다. 2020년까지 육상 17%, 해양 10%의 보호지역 지정을 목표로 했던 아이치타깃은 실패했지만, 2030년까지 육상과 해양에 30% 보호구역을 설정하겠다는 원대한 목표가 논의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다. 이를 이행하기 위한 생물다양성 보전 재정 2000억달러의 조성과 생물다양성에 유해한 보조금 5000억달러 금지도 주요 쟁점으로 다뤄질 예정이다. 

한국은 이번 생물다양성 당사국총회 의제의 성공적 타결을 이끄는 선도국가 그룹(HAC N&P)에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자연 손실을 멈추기 위한 근본적이고 실질적인 이행방안 없이는 그저 좋은 말들의 향연이 될 우려가 높다. 국제사회에서 높아진 한국 정부의 위상만큼 내실 있는 생물다양성 정책과 실행력을 갖춰야 할 때다.

<신재은 풀씨행동연구소 캠페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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