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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춘천 출생, 형과 함께 아버지로부터 축구 교습 시작, 서울 동북고 1학년 때 대한축구협회 해외 연수 프로그램으로 독일행, 동북고 중퇴 및 독일 잔류, 독일 4부리그 함부르크 SV에서 프로 데뷔, 이듬해 1부리그 함부르크로 콜업, 2013년 독일 명문 레버쿠젠 이적, 2015년 잉글랜드 토트넘 이적, 2022년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축구팬이라면 모두 알고 있는 손흥민(30)의 프로필이다. 그의 인생에서 최대 터닝 포인트는 독일 1년 연수 후 한국 컴백이 아니라 독일 잔류를 결심한 것이다. 17세 나이에 그런 험난한 길을 왜 자초한 걸까. 그건 세계 최고 선수로 성장하려면 한국보다 독일에 있는 게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독일은 손흥민에게 기회의 땅이었다. 유스 시스템은 훌륭했고 리그 시스템도 좋았다. 손흥민과 아버지는 싸구려 모텔을 전전하며 클럽훈련과 개인훈련을 병행했다. 클럽에서는 차별과 무시를 참았고, 클럽 밖에서는 힘겹고 외로운 삶을 견뎠다. 희망과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

독일 분데스리가(1부) 구단들은 4부리그 구단을 함께 운영하곤 한다. 4부 구단은 유망주에게 성인 경기(Adult match)를 지속적으로 경험하는 곳으로 활용된다. 손흥민이 프로로 데뷔한 곳도 분데스리가 함부르크가 운영하는 함부르크 SVⅡ(4부)다. 그곳에서 6경기를 뛴 뒤 손흥민은 1부리그 함부르크로 올라갔다. 함부르크에서 3시즌, 레버쿠젠에서도 3시즌을 소화한 뒤 잉글랜드로 넘어갔다. 그리고 토트넘에서 일곱시즌 만에 리그 득점왕이 됐다.

프리미어리그는 세계 최고 축구판이다. 세계 최고 선수와 감독들이 모이고 돈이 집중된다. 그런 곳에서 남미, 유럽이 아닌 아시아 선수가 득점왕이 된 건 기적이나 마찬가지다. 우리가 손흥민에게 기뻐하고 뿌듯해하는 건 당연하다.

손흥민은 한국인이다. 하지만 한국 유소년 시스템이 배출한 ‘한국’ 선수는 아니다. 손흥민은 성적지상주의에 매몰된 한국 유스 시스템을 떠나 독일로 갔다. 그게 손흥민이 성공하는 데 일생일대의 결정이 됐다. 손흥민은 유럽 선수처럼 플레이한다. 자신과 아버지의 엄청난 노력, 양질의 독일 육성 프로그램, 선수 중심 유럽 축구 시스템이 빚은 결과다. “손흥민의 성공 비결은 한국을 일찍 떠난 것”이라는 말에 씁쓸하지만 수긍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제2, 제3의 손흥민을 원한다. 한국 축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축구 입문 연령 낮추기, 유소년 시절 개인기 위주 훈련, 승부에 매몰되지 않는 유소년대회 개최, 유소년 시기 출전시간 보장, 성인경기 조기 경험 등이다. 유럽은 하고 있지만 한국은 하지 못하고 있는 기본들이다. 이걸 한국 축구가 앞으로도 하지 못한다면, 제2, 제3의 손흥민을 꿈꾸는 우리 유망주들은 어떻게 해서든 한국을 빨리 떠나려고 할 게 분명하다.

손흥민이 한국 시스템이 낳은 작품이 아니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그게 한국 유스 시스템 혁신을 결단하는 첫걸음이다. 현재 어린 선수들만큼은 손흥민과 달리 우리나라에서 좋은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 뒤 큰 무대로 진출해야 한다. 그게 우리 시스템이 추구하는 방향이 돼야 한다. 손흥민 덕분에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한국 축구 미래를 고민할 때다.

김세훈 스포츠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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