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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한 건 1993년 3월이다. 자대 배치를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다.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특별 사찰 요구를 거부했고 미국은 팀스피릿 훈련 중단 약속을 파기했고 따위의 한반도 정세 얘기는 듣지도 못했다. 전쟁 위기가 ‘원자로 건설’ 때문인지 ‘핵미사일 개발’ 때문인지 몰랐다. 장교들은 “북한 놈들이 쳐들어온다”고 했다. 전투준비태세 단계가 높아졌다. 군장을 꾸린 채 취침하기도 했다.

개별 인간의 가치와 의지가 무력할 수 있다는 걸 처음 느꼈던 것 같다. 세상, 특히나 정세는 ‘나’라는 존재는 안중에도 없이 돌아갔다. 전쟁과 죽음, 핵의 공포를 체감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나만 그런 건 아니었다. 호전성을 곧잘 드러내던 선임병은 보초를 서며 욕설 한마디를 내뱉고 흐느꼈다.

최전방에서 근무하던 1994년 6월 전쟁 직전까지 갔다는 건 제대하고 수년이 지나서 알았다. 미국 클린턴 행정부는 핵무기 개발을 막으려고 북한 영변 폭격을 계획했다가 격론 끝에 취소했다. “(폭격이) 북한 당국을 자극해 100만명이 희생될 것으로 예상되는 전쟁을 불러오리라고 확신하고 있었다”는 1999년 CNN 보도를 읽곤 섬뜩했다. 남북한 사람 100만명이 죽을 수도 있는 폭격을 두고 미국은 ‘외과적 수술’이란 완곡어법을 썼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공포의 이유로 ‘무지’ ‘무기력’을 들었다. 미래에 무슨 불행이 닥쳐 큰 상처를 입힐지 모르는 무지와, 그 불행이 닥쳤을 때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무기력이 공포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김정은과 트럼프가 고조시킨 최근 위기에서 무지와 무기력을 다시 느꼈다.

‘무신경’도 공포스럽다. 미디어는 미국의 전략무기를 곧잘 소개한다. 스포츠 경기 중계하듯 예상 시나리오를 전한다. 어느 유력 언론은 외신기사를 ‘남한과 북한이 전쟁하면 누가 이길까’라는 제목을 달아 내보냈다. ‘전개’ ‘충돌’ ‘정밀타격’ 같은 용어는 ‘나뒹구는 시체’를 은폐한다. 동물행동학자 콘라트 로렌츠는 원격 조작 무기를 두고 “우리의 정서적인 심층은 집게손가락의 발사 신호가 타인의 창자를 찢는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한다”고 했다. 저널리즘 언어도 그 ‘집게손가락’처럼 움직이는 듯하다.

어떤 이들은 공포에 공포로 대응하자고 말한다. 현실 정치를 지배한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에 기댄 핵무장론이다. 북핵이 그런 논리의 결과였다. 남한의 핵잠수함 추진도 예외일 수 없다. 한반도 위기는 ‘평화를 원하면 평화를 준비하라’는 교훈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지 전쟁 준비를 못했기 때문이 아니다.

‘핵무기 없는 세계’? 2000년대 후반 이상주의적인 이름의 성명서를 내놓은 건 헨리 키신저, 조지 슐츠, 윌리엄 페리 같은 국방·외교를 오래 한 현실 정치인들이다. 미·소의 수소폭탄 실험 이후 버트런드 러셀과 아인슈타인이 주도해 1955년 발표한 ‘핵무기 없는 세계와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호소하는 선언’은 전면적 군비 축소와 핵무기 폐기를 위한 협약 체결을 제안하면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행복과 지식과 지혜가 지속적으로 진보하느냐 퇴보하느냐가 결정된다”고 했다. 50년이 지나서도 유효한 선언이다.

바우만이 말한 공포의 세 번째 이유는 무지와 무기력에서 비롯된 굴욕감이다. 그는 “(굴욕감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불행에 따른 손상의 많은 부분이 신호를 제때 탐지하지 못한 우리 자신의 부주의, 지나친 꾸물거림, 게으름, 의지 부족 때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우리의 자존심과 자신감에 입게 되는 상처”(<도덕적 불감증> 책읽는 수요일)라고 했다. 군축·핵폐기를 위한 실천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 중 최우선 과제가 되길 바랄 뿐이다.

<김종목 모바일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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