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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방송법은 간접광고를 규제하고 있다. 허용은 하지만, 선은 넘지 말라는 의미일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시행령에 이런 조항이 있다. ‘간접광고가 해당 방송프로그램의 내용이나 구성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할 것’ ‘해당 방송프로그램에서 간접광고를 하는 상품 등을 언급하거나 구매·이용을 권유하지 아니할 것’ 그리고 무엇보다 ‘간접광고로 인하여 시청자의 시청흐름이 방해되지 아니하도록 할 것’ 등이다.

지난달 9일 밤에 방송한 SBS 드라마 <더 킹: 영원의 군주> 8회의 한 장면을 보면 이렇다. 잠복 중인 여자형사가 차 안에서 컵라면을 먹는다. 후배인 남자형사가 기다렸다는 듯이 포장된 볶음김치를 내민다. 김치를 맛본 여자형사가 감탄하며 말한다. “아, 시원해, 장미(남자형사의 별명) 김치 좀 먹을 줄 아네.”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여자형사가 주머니에서 화장품을 꺼내 입술과 볼에 찍어 바른다. 남자형사가 묻는다. “그 신문물은 뭔데….” 여자형사가 대답한다. “애들 앞에서는 멀티 밤도 못 바른다더니. 너 가져. 이거 하나면 다 돼.” 이 장면들은 방송된 지 한달이 다되어가는 지금도 시청자들 사이에서 ‘홈쇼핑을 방불케하는 PPL 광고(방송 소품을 이용한 간접광고)’로 회자되고 있다.     

지난 4월 시작한 <더 킹>은 ‘시청률 보증수표’로 불리는 김은숙 작가의 작품답지 않게 고전 중이다. 1~2회만 시청률 10%를 넘어섰을 뿐 지난달 30일 방송된 13회까지 쭈욱 ‘한 자릿수’ 시청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남은 3회 동안에 대단한 반등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달 29일에는 ‘전 국민의 안전의식 고취를 위해’ <더 킹>이 방송될 시간에 영화 <컨테이젼>이 긴급 편성되기도 했다.  

실패 요인을 따져보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평행세계라는 생소한 설정, 이전 작품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이는 배우들의 연기와 연출 등 여러 진단이 나온다. 여기에 과도한 PPL 광고 문제도 빠지지 않는다. 사실 드라마가 실패한 뒤 나오는 지적은 거기서 거기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많은 단점은 작품이 실패했을 때 도드라져 보일 뿐이다. 작품이 보란 듯이 성공했을 때는 되레 생소함이 신선함으로, 익숙한 연기와 연출이 정석으로 포장되기도 한다.

그러나 PPL 광고에 대한 지적은 다르다. 지금까지 등장한 PPL 광고 분량을 정확히 측정해 보지는 않았지만 <더 킹>의 경우는 확실히 과도하다. 명백하게 ‘시청자의 시청흐름’을 방해한다. 나 역시 <더 킹>을 시청하다가 맥락 없는 PPL 광고가 등장해 어이없어했던 경험이 한두번이 아니다. 처음에는 황당했다가, 수차례 반복되니 무시당하는 것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물론 PPL 광고가 필요한 방송제작의 현실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니 웬만한 PPL 광고는 용인할 수 있는 여유도 있다. 다만 최소한의 성의는 보여줬으면 좋겠다. 지난해 9월21일 방송된 JTBC 드라마 <멜로가 체질> 14회가 아예 극 중에 ‘맥락 없는 PPL 광고’를 논의하는 장면을 넣어 실제 PPL 광고를 실행한 것처럼. 지극히 일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PPL 광고가 진행되고 있는 작은 장면도 작가의 작품 속에 있지 않은가.

<홍진수 문화부 soo4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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