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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같다”는 말은 여러 오해를 품고 있다. 사람들은 동화에서 꿈과 희망이 가득하고 정의가 승리하는 세계를 떠올린다. 작은 생명 하나 소홀히 여기지 않는 평등한 세상을 상상하기도 한다. “아동문학을 하는 분인데 술을 너무 잘 드시네요” 같은 말을 들어본 적도 있다. 그들이 생각하는 어린이의 존재는 방긋방긋 잘 웃어야 하고 해맑아야 한다. ‘해맑다’는 말은 어른이 실현하지 못하는 이상향을 함축한 것이다. 어린이가 어른 앞에서 “나는 불행하다”고 말하는 것은 공공연한 금기다. 어른들은 자신들이 어린이를 불행하게 만든 사람이 되는 상황을 아주 싫어하기 때문이다. 구원은 어린이의 웃음에서 구하면서 눈물은 외면한다. 어린이에게 종종 어른만큼 또는 더욱 가혹한 처벌을 요구하기도 한다. 19세기 초까지도 잘못을 저지른 여섯살 어린이를 교수형에 처한 기록이 있다. 지난 월요일에는 파키스탄의 여덟 살 어린이 조라가 고용주에게 고문을 당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먹이를 주던 앵무새가 새장에서 날아갔다는 이유였다. 조라는 자신보다 더 어린 그 집의 아기를 돌보던 아동 노동자였다.

다시 동화 이야기로 돌아가면, 뉴베리상으로 잘 알려진 존 뉴베리는 성공한 동화책 출판업자였다. 그가 ‘제임스 박사의 해열제’의 특허를 소유하고 있었으며 그 약을 팔기 위해서 자신이 출판하는 어린이책에 꾸준히 ‘제임스 박사의 해열제’를 먹지 않으면 인물이 죽는 내용을 포함시켰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뉴베리가 만든 책을 사고 돈을 조금만 더 내면 사은품으로 공과 바늘을 하나씩 주었는데 나쁜 일을 하면 그 공의 검은 쪽, 착한 일을 하면 빨간 쪽에 바늘을 꽂게 되어 있었다. 어른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 어린이는 몇 번의 재판을 거치는 어른들보다 훨씬 쉽게 ‘악의 오명’을 쓴다. 어른들은 추상화된 자기 상상 속의 어린이와 눈앞의 어린이가 일치하지 않으면 힘으로 그 어린이를 짓밟는다. 고립된 어린이에게는 변호사가 없다. 우리 곁에서도 한 어린이가 여행가방에 갇혀 세상을 떠났다. 그는 계모의 악행으로 목숨을 잃은 것이 아니라 약자에게 무자비한 성인 권력의 폭력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당한 것이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20년 6월 5일 (출처:경향신문DB)

또다시 동화 이야기로 돌아가면, 뉴베리 가문은 약도 잘 팔고 동화책도 잘 팔았지만 어떻든 어린이책을 펴내어 외로운 어린이들이 자신의 변호인을 책 속에서라도 모실 수 있도록 큰 역할을 했다. 고마운 사람들이다. 1922년에 시작된 뉴베리상은 2020년에 수상작으로 제리 크래프트의 <뉴 키드>를 선정했다. 이 책의 주인공 조던 뱅크스는 사립학교에서 몇 안 되는 유색인종 학생이다. 반 아이와 교사는 “경제적 지원”이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반사적으로 조던을 쳐다본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빈민가에 살며 망가진 가정에서 자랐고 아빠는 없을 것”이라고 단정한다. “난 규칙을 지켜야 하고 다른 애들은 어겨도 되는”, 겉으로 우아한 이 학교는 조던에게는 적대적 공간이며 조던은 그 제도와 싸운다. 조던의 이야기는 미국의 시위 현장을 걷는 어린이에게 힘이 될 것이다. 좋은 어린이책은 이렇게 동화 같은 일을 한다.

마지막으로 동화 이야기로 돌아가면, 영원히 어린이로 사는 피터팬은 없다. 피터팬의 존재가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건 오히려 자라지 않는 어린이에 대한 상상의 비현실성이다. 어린이를 비롯한 모든 약자는 세계와 투쟁하며 성장하고 독립한다. 어린이는 필연적으로 자란다. 그 필연을 두려워하는 건 약자를 영원한 도구로 여겨온 사람들일 것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가장 염려하는 건 성숙 없이 성장만 해서 어른이 되어버린 저열한 차별주의자들이 여전히 눈앞에 있다는 것이다.

<김지은 서울예대 문예학부 교수 아동문학평론가 d@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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