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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속이 없고 미덥지 아니한 말’ ‘잠결이나 술김에 하는 말’ ‘앓는 사람이 정신을 잃고 중얼거리는 말’.
‘헛소리’에 대한 사전적 정의를 알고 싶어 포털 사이트 국어사전을 뒤졌더니 이런 풀이들이 나왔다. 친구나 회사 동료들 간 주고받는 악의없는 농담들을 접할 때마다 “헛소리, 그만해”라는 말을 버릇처럼 했는데, 정확한 뜻을 알고 나니 마구 사용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인들을 실속 없거나, 잠이나 술이 덜 깨거나, 정신 나간 사람으로 만드는 사려 깊지 못한 표현이었다. 글밥을 먹고살면서도 그간 국어사전도 제대로 찾아보지 않은 게으름에 대해 이 지면을 빌려 반성한다.
사전을 뒤지게 된 것은 최근 청와대발 인사파동을 보면서였다. 망언으로 물의를 빚은 문창극 국무총리 지명자, 제자 논문을 표절하고 연구비를 가로챘다는 의혹을 받는 김명수 교육부 장관 내정자, 불법 대선자금을 전달한 이병기 국정원장 내정자, 음주운전을 저지른 정성근 문화부 장관 내정자 등. 국가개조와 개혁을 이끄는 인선이라는데, 문제 인물들만 그득했다. 게다가 이들의 전력은 과거 경력과 행적들을 신경 써서 조회했다면 금세 불거질 법한 것들이었다.
[김용민의 그림마당] 2014년 6월24일
그런데도 청와대 민경욱 대변인은 이들을 치장했다. “냉철한 비판의식과 합리적인 대안을 통해 잘못된 관행과 적폐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해온 분”(문창극 지명자) “교육계에서 신망이 두터운 교육행정 전문가”(김명수 내정자) “엄중한 남북관계와 한반도 상황 속에서 정보당국 역할 수행과 개혁을 이끌 적임자”(이병기 내정자) “국정철학에 대한 높은 이해도와 풍부한 방송 경험을 바탕으로 국민과의 소통에 크게 기여할 분”(정성근 내정자).
칭찬의 근거는 무엇일까. 혹시 청와대 인사권자는 “위안부 문제는 일본이 사과할 필요 없다” “식민지배는 하나님 뜻” “6·25전쟁은 하나님이 주신 것” 등 문 지명자 문제 발언들이 “냉철한 비판의식”에서 비롯됐다고 본 것일까. 김 내정자의 논문표절과 제자 연구비 가로채기는 “신망이 두터운 분”이어서 가능했다는 판단을 한 것인가. 불법 대선개입 의혹을 받은 이 내정자가 “국정원 개혁의 적임자”가 된 것은 불법 대선자금을 전달해본 경험을 십분 활용하라는 주문인가. 음주운전 단속 경찰에게 “가족끼리 왜 그래. 나 기자인데”라고 큰소리를 친 정 내정자의 발언은 “국정철학에 대한 높은 이해도”의 증거로 보는 것인가.
새누리당의 감싸기도 독해불능이었다. “심하게 검증하면 배겨날 인물이 없다”고 했지만, 보통의 잣대를 적용해도 이들의 과거 행태는 상식 밖이다. ‘일본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에게 사과할 필요 없다’고 했다가는 술자리에서 뺨 맞기 십상이다. 학계 권력자가 아니고서는 누가 ‘뒤탈 없이’ 제자 논문과 연구비를 가로챌 수 있겠는가. 보통 사람이라면 대선자금, 그것도 ‘불법’ 딱지가 붙은 돈에 접근할 수도 없다. 음주운전 단속에 걸린 사람들의 반응은 “가족끼리 왜 그래”가 아니라 “한번만 봐주세요”라는 것을 왜 모르는가.
아무리 궁리해도 청와대의 미사여구 가득한 소개와 이들의 실제모습을 연결할 수 없었다. 불경스럽게 들릴 수 있겠지만, 기자는 청와대 발표가 헛소리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런 사람들을 보호한답시고 “검증잣대가 너무 가혹하다”고 했던 여당 지도부 발언도 이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을 터다.
마지막으로, ‘헛소리는 실속 없고 미덥지 아니하거나, 잠이나 술에서 덜 깨거나, 앓는 사람들에게서 나온다’는 사전적 정의를 복기해 본다. 그러고 보니 문제 인사들을 칭송한 청와대나, 이들을 감싼 여당의 현재 심신상태가 정상인지 의심스럽다. 글 모두에 더 이상 이런 말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래도 여권에 한마디 해야겠다. 헛소리 그만해!
이용욱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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