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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금 더 걷고 “증세는 아니다”
종북몰이 하며 “통일은 대박”
현실 외면하는 ‘폭주’ 멈추길
가히 ‘기만의 시대’라 할 만하다. ‘13월의 울화통’ 사태는 이 시대 기만의 작동원리를 여실히 보여준다.
정부는 증세는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이번 연말정산으로 더 걷히는 세금이 9300억원, 지난해 대비 올해 증액된 20조원 예산의 5% 정도. 꽤 짭짤한 수입원이 된 셈이다. 그런데도 증세는 아니라고 우겼다. 대부분 고액 소득자들이 더 내는 것이라고 했다. 소득재분배 효과도 꽤 있다고 설득했다.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역풍은 거세게 휘몰아쳤다. 다수 언론들이 앞다퉈 불을 지폈다. ‘왜 우리만’이라는, 봉급쟁이들의 이유 있는 박탈감을 자극했다. 전체의 ‘큰 그림’은 보여주지 않고 ‘세부적인 실책’을 집중 부각시켰다. 여당과 합세해 세법개정안을 통과시켰던 야당도 덩달아 춤췄다. 결과적으로 정부의 증세 꼼수가 끼어들기는 했지만 세제 개편의 전체적 취지마저 왜곡됐다. 일부 언론이 강력하게 저지선을 폈지만 역부족이었다. 가뜩이나 지지율 하락에 촉각이 곤두서 있던 정부 여당은 백기를 들었다. 세제 개편의 기본 방향마저 흔들릴 처지가 됐다.
처음부터 솔직했으면 좋았을 터이다. 부족한 재정을 충당하고 복지 재원을 만들자면 이 정도 부담은 나눠 지자고 설득했다면. 뒤늦게라도 봉급쟁이의 유리지갑만 아니라 은행과 금고에 현금을 가득 쌓아놓고 있는 기업들에도 더 거두겠다고 했다면. 그러나 끝내 증세는 안 하겠다고 고집한 탓에 엉망진창이 됐다.
아우성이 한창일 때 박근혜 대통령은 침묵했다. 뒤늦게 ‘유감’을 표명했다. “연말정산 과정에서 국민께 많은 불편을 끼”친 게 유감이라고 했다. 치밀하고 종합적이지 못한 준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탓을 주로 했다. 왜 이런 ‘증세 꼼수’가 나왔는지에 대해서는 모른 척했다. 기만의 가면 뒤에는 오만함과 비겁함이 도사리고 있기 마련이다.
연말정산 사태에 유감을 표하는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또 다른 역풍을 예고했다. 지방교부세와 교육재정교부금도 손봐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이 그렇다. 지자체와 교육청의 안일함을 탓했다. 교부금이 줄 것을 우려해 지자체가 자체 세입 확대에 적극적이지 않다고 그 비효율성을 지적했다. 학생 수가 주는데도 들어가는 돈은 줄지 않는 것도 문제라는 질책도 뒤따랐다. 구조적으로 부족한 세원에 중앙정부의 대책 없는 복지정책 때문에 허리띠를 잔뜩 졸라매고 있는 지자체나 교육청으로서는 울화통 터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니나 다를까,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에서부터 거센 반발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기만은 꼭 그것을 의도해서만 그런 것은 아니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엉뚱한 처방을 내놓은 것이야말로 국민을 우롱하고 기망하는 처사다. 따지고 보면 이 정권의 정치적 기만은 그 뿌리가 깊다. 경제민주화 공약에서 기초연금에 이르기까지 선거 때의 약속을 깬 것이 한둘이 아니다. 박 대통령이 애용하는 ‘통일대박론’ 역시 기망에 가깝다. 종북몰이로 북한에 대한 적대감을 한껏 키우면서 남북의 상생과 협력을 말하는 것은 또 어떻게 가능한 일일까. 기만의 통치가 오래갈 수는 없다. 온갖 논리와 갖은 포장에도 진실은 드러난다. 왜? 현실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길을 잃었다. 신뢰와 원칙의 이미지는 금 간 지 오래다. 무너질 것 같지 않던 콘크리트 지지율이 뚝 떨어지고 있는 오늘의 현실이 그 방증일 터이다. 반전을 모색하겠지만, 쉽지 않을 것이다. 정치적 위기, 국정 혼선과 정책적 파탄이 곧 박 대통령 자신으로부터 비롯되고 있는데도 그 현실을 좀처럼 인정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대로 간다면 박 대통령과 집권 세력은 물론이고 나라 전체로도 불행이고, 위험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27일 전남 광주 계림동 대인시장을 방문해 시장 상인들과 인사를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지금이라도 박 대통령과 집권세력이 제 길을 찾았으면 한다. 빈말이 아니다. 그래야 집권세력의 무모함도 조금은 덜하지 않을까 싶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 때 국정원 선거개입 행태나 통합진보당 해산 사태에서 그래 왔듯이 위기가 고조될수록 민주주의 체제 자체를 근본적으로 와해시키고 싶은 유혹은 더 커질 게 뻔하다. 다수 언론의 비호와 공권력, 공안기관과 사법권의 통제를 통해 얼마든지 그 저항을 진압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지난 40년의 한국 현대사가 기록하고 있듯이 그것은 사회적 격변의 신호탄이 되기 십상이다. 그럴 경우 기득권 세력은 그 뿌리부터 흔들릴 각오를 해야 할지 모른다.
그 같은 폭주를 견제하고 완충할 수 있는 현실적인 힘은 그나마 언론에 있어 보인다. 특히 이 정권을 이끌고 비호해왔던 이른바 ‘보수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들 언론이 그동안 보여왔던 ‘이념적 전투성’에 비춰보면 무망한 기대인지 모른다. 그러나 자신들이 그동안 몸소 겪어왔던 역사의 교훈을 기억하고 있다면 이제는 그 소모적인 전투성을 누그러뜨릴 때도 됐다. 언론의 제 구실을 하면서도 보수의 ‘아름다운 꿈’을 펼쳐 보일 때도 되지 않았을까.
백병규 |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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