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대통령이
퇴임하고 2년이 지난 시점이면 업적이 좋든 나쁘든 재임 중의 정책과 사건에 대한 기억이 생생히 남아 있을 때이다. 따라서 퇴임
2년 만에 회고록을 내는 것에 위험부담이 없을 수 없다. 좋은 평가를 받고 물러났다면 상관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회고록 발간은
모험에 가까운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모두가 기억하고 있는 일을, 오직 자신의 경험이라는 이유로 일반적 기억과 다른 주장을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잘못된 일로 기억하고 그 잘못으로 인한 문제가 여전히 남아 고통을 주고 있는 경우라면 말할 것도 없다.
시민들의 생생한 기억과 자신의 기억이 경쟁하는 게임에서 승부는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자신의 실책과 실패를 되돌아보는
자세로 썼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그건 후대에 좋은 교훈을 남기는 의미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정식 회고록은 아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 이후 자신의 국정에서 부족했던 점을 솔직히 인정하며 성찰하는 글을 남긴 것이 좋은 예다.
그러나 이명박 전 대통령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경향신문이 입수해 보도한 그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에서 그는 자화자찬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는 상당히 용기가 있는 사람이거나 정치적 항변을 하려는 욕구가 너무 큰 나머지
자신이 불과 2년 전에 한 일을 잊어버린 사람이거나 둘 중 하나인 것 같다. 감사원이 발표했듯이 4대강 사업은 천문학적인 세금을
낭비하고 앞으로도 유지·보수를 위해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게 만든 이 전 대통령의 대표적 실책이다. 그러나 그는 “세계 금융위기
극복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자원외교의 총체적 평가는 진상조사를 통해 밝혀야겠지만 일부 드러난 것만으로도
실패가 분명하다. 그런데도 그는 총리에게 책임전가하거나 미래 가치 운운하며 설득력 없는 변명을 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해외자원개발 국조특위 홍영표 간사와 최민희 의원이 29일 국회 정론관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 중 해외자원개발 책임 회피를 비판하고 국정조사 출석을 요구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그는 외교 치적도 내세웠지만 한·미동맹 만능주의에 빠져 북한, 중국, 일본과의 관계를 소홀히 했고, 그 여파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은 외면했다. 불필요한 독도 방문, 일왕 자극 발언으로 박근혜 대통령 집권 이후 계속되는 한·일관계 악화의 원인을
제공한 것도 그였다. 회고록에는 그의 형과 측근, 그것도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일수록 심했던 부패행위의 긴 목록에 대해 반성의
한마디 없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라며 재벌 사면, 부자 감세, 법인세 인하로 부의 집중을 심화시킨 반면 사회양극화는 방치하고 서민의
삶을 힘들게 한 데 대한 미안함도 없다. 그렇게 감추고 싶은 것이 많은데 어떻게 자기 칭찬의 내용만으로 800쪽을 다 채울 수
있었는지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 회고록이 이 전 대통령과 참모들의 집단 기억의 기록이라고 자랑했다는데 그건 집단 착오의
기록이라고 하는 게 마땅하다.
'정치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설]손바닥 뒤집듯 정책 번복… 식물정부 자처하나 (0) | 2015.01.30 |
---|---|
[길 위에서]기만의 통치 (0) | 2015.01.29 |
[강현석의 기자메모]뜬금없는 대통령의 ‘무등정신’ 축사 (0) | 2015.01.28 |
[시론]박근혜 정부 인적쇄신이 안되는 까닭 (0) | 2015.01.25 |
[정동칼럼]왜 정치가 문제인가? (0) | 2015.0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