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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실험예술은 사람 사이의 경계와 시장의 지배를 허무는 놀이”


극우독재 시절, 문화도 획일적이었다. 사람들은 획일적인 문화 속에서 안도했고 벗어나길 두려워했다. 민주화가 되고 새로운 세대가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낸다는 말도 있었고 우리도 개성과 취향이 만발한 ‘유럽 스타일’로 간다고도 했다. 그러나 어느새 문화는 다시 획일화하고 있다. 이번엔 극우독재가 아니라 시장의 율법에 의해서. 10대들이 노 아무개 점퍼를 입음으로써 안도감을 느끼는 걸 개탄하는 사람들은 시장에서 승리한 공 아무개, 신 아무개의 소설 외에는 읽으려 들지 않는다. 이한주와 요기가갤러리의 존재가 도드라지는 시절이다.


 

 홍대 앞에서 다양한 실험문화를 선보이고 있는 이한주 대표가 서울 합정동 ‘요기가’ 표현갤러리에서 직접 깎아 만든 단소를 불고 있다. 뒷배경 작품들은 ‘수경화실’에서 미술을 배우는 일반인 작품이다. ‘요기가’에서는 무언가를 표현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술가가 된다. _ 강윤중 기자(출처 : 경향DB)




▲ 한때 인터넷·돈맛에 빠져 봤지만

사회시스템은 알아갈수록 회의

사람들은 규칙이 없다는 걸 겁내


▲ 공연자·예술가 위주의 공간 없어

“요기가 바로 작업실” 하다가 작명

술 파는 대신에 공짜 막걸리 제공


▲ 클래식·이색 퍼포먼스 뭐든지 OK

외국 뮤지션도 공연하겠다며 찾죠


김규항 = ‘요기가’ 이름이 재밌어요.


이한주 = 요가 용품 파는 곳인 줄 알고 찾아오는 분들이 종종 있죠.(웃음) 지금처럼 전시와 공연 위주의 공간이 되기 전엔 작업실이었는데 4층이었어요. 옥탑방하고 초인종이 붙어 있어서 택배 아저씨가 자꾸 옥탑방 초인종을 눌러서 그 집 아주머니에게서 항의를 받곤 했죠. 그래서 저희가 “여기가 작업실”이라고 써붙여 놨는데 그게 이름이 되어버린 거죠, 영문 표기도 쉽고 좀 더 작은 느낌이 좋아서 ‘요기가’가 된 거고요.


김규항 = 요기가는 공연장 겸 갤러리입니다. 이미 공연장도 갤러리도 많은데 부족한 게 보였습니까.


이한주 = 공연자나 예술가 위주로 돌아가는 공간이 없더라고요. 손님들, 구매하는 사람들 위주로 돌아가더라고요. 그래서 아트상품 같은 것도 ‘이건 너무 비싸다’라고 쉽게 말하는데 작업자로선 모욕적인 말일 수 있거든요. 작업자가 갖고 있는 생각이나 마음보다는 시장논리로 재단하는 거니까요. 그래서 예술가들끼리 모여서 만들어보자. 공간에 의해 우리가 간택되는 게 아니라 우리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공간을 만들자. 공연과 전시 위주 공간이지만 뭐든 가능합니다. 음악 녹음도 하고.


김규항 = 저도 공연을 해봤지만 울림이 특이해요. 앰비언스(음장감)가 좋다고 할까?(웃음)


이한주 = 흡음이 완벽한 공간하고는 다른 맛이 있죠. 주류 음악 스타일로 하는 외국 뮤지션들이 공연하고 싶다고 찾아오기도 합니다.


김규항 = ‘요기가에서 이런 것도 하나’ 싶은 공연이 있더군요. 개성이 있고 실험적인 공간은 운영자의 주관이 뚜렷하고 자연스럽게 동아리가 이루어지면서 일정한 사람들끼리 유유상종하는 곳이 되기 쉽죠. 바꿔 말하면 그 동아리 밖에 있는 사람에겐 접근하기 어려운 공간이 되기 쉬운데요.


이한주 = 누구든 어떤 용도든 하자고 할 수 있어요. 저희가 주목하는 건 오히려 참여 방식인데요. 필요할 때 대관료 내고 한 번 쓰는 방식을 넘어서 미리미리 한 달에 몇 만원씩이라도 내서 사용하고 운영에도 함께 참여하고 하는 방식을 지향합니다.


김규항 = 공연의 스펙트럼이 어떤가요.


이한주 = 현악사중주 같은 클래식 공연도 있고 아무래도 그 반대쪽은 더 많죠. 얼마 전엔 김치 담그는 퍼포먼스를 하는 외국 예술가도 있었고, 한번은 피를 뿌리는 퍼포먼스도 있었는데 그게 느낌이 참 묘하더군요.


김규항 = 현대인들은 먼지와 피에 대한 지나친 공포가 있죠. 조금은 더럽고 이따금은 상처도 나고 해야 사람답게 사는 건데요. 요기가는 먼지는 어지간하니 피를 좀 더 보충하기 바랍니다.(웃음) ‘요기가는 뭐든 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말은 어떤 걸 하기에도 전문적인 공간은 아니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한주 = 자기 작업실과 갤러리나 공연장의 중간 정도라고 봐도 좋을 것 같아요. 집에서 하면 집이 엉망이 될 것 같다든가(웃음) 완성은 안되었지만 사람들에게 보여보고 싶다거나 하는 게 가능한 거죠.


김규항 = 선생도 실험예술가로 활동하고 있는데 ‘불가사리’ 공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이한주 = 10여년 전인데요. 강태환 선생을 비롯해서 실험음악을 하는 어른들은 있는데 젊은 사람들은 오히려 없다는 이야기가 나와서 사토 유키에랑 해서 한 달에 한 번 공연하기 시작했죠. 첫 공연의 관객은 두 명의 취객이었어요. 잘못 알고 온.(웃음)


김규항 = 실험예술은 대중들에게 좀 무거운 인상이 있어요. 강태환 선생도 그런 편이고 무세중 선생은 아예 무서워하는 분들도 있더군요. 무거운 게 무작정 나쁜 건 아니지만, 불가사리는 공연자들이 관객에게 카리스마를 행사하려 하지 않고 킬킬거려도 좋다는 식의 태도가 있더군요.


이한주 = 관객들도 그렇게 느끼고 저희 스스로도 그렇죠. 그런데 공연자가 그런 걸 겁을 내는 경우가 많아요.


김규항 = 겁을 낸다.


이한주 = 규칙이 없다는 걸, 자기 스스로 규칙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겁내요. 음악의 경우에 다른 방법으로 연주하는 걸 종교에서의 이단처럼 배척당할까봐 겁내고요. 오래 한 사람들일수록 오히려 더 그런 편이에요.


김규항 = 시스템이 심어놓은 두려움이겠죠. 장르예술에 충성 서약을 한 예술가가 아니라면 굳이 안 그래도 되는데요.


이한주 = 실험예술, 즉흥예술이 하나의 특별한 장르처럼 여겨지는 거죠. 어떤 장르든 할 수 있는 게 실험이고 즉흥인데요.


김규항 = 선생도 예전에 장르예술을 넘어서 아예 상업적인 일도 하셨지요. 이제 그쪽을 보면 어떤가요?


이한주 = 얼마 전에 그쪽의 아는 분 회사가 창업식을 하는데 연주를 부탁해서 갔었어요. 컴퓨터 음악하고 영상으로 라이브 페인팅을 했는데, 그쪽 사람들의 비즈니스 관습이랄까 다들 빠짐없이 인사를 나누어야 한다는 분위기 같은 게 이젠 한눈에 보이더라고요. ‘너무 멀리 왔구나 이젠 다시 돌아가진 못하겠구나’ 생각이 들었어요.(웃음) 그런데 되게 편했어요.


김규항 = 시쳇말로 꽤 잘나가셨던 걸로 압니다. 그런 생활은 예술가로서 자존감을 상하게 하는 경우도 있지만, 남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고 스스로도 우쭐해져서 중독되어 가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이한주=인터넷을 제대로 알고부터 생각이 바뀐 것 같아요. 처음에 인터넷 나왔을 때는 ‘야, 이거면 국가가 없어지겠구나. 사람들이 힘을 갖게 되겠구나’ 고무되어선 돌아다니며 인터넷 전도사 노릇을 했죠.(웃음)


김규항 = 당시 그런 분들 많았죠. 물론 인터넷은 어떤 쪽으로든 유용한 도구지만, 그렇게 인터넷 예찬이 무성하던 시절 이미 자본은 새로운 돈벌이로 치밀한 전략을 수행 중이었는데요.


이한주 = 그러게요. 시간이 지나면서 보니까 인터넷은 그냥 하나의 도구더라고요.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잘 이용할 수 있는 도구. 그런데 예술가라는 저는 온갖 대기업 일들을 맡아서 시간과 열정과 내 정신까지 팔아먹으면서 그런 흐름에 일조한 거죠. ‘내가 무슨 짓을 하는 건가’ 자괴심에 고민하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안 해야지!’(웃음)


김규항 = 비장한 결단을 그리 경쾌하게 하다니.(웃음)


이한주 = 프로젝트 하나만 참여하면 남들 연봉을 받았으니 돈 무서운 줄 몰랐죠. 애플 시네마디스플레이의 최초 개인구입자입니다 제가.(웃음) ‘CF나 뮤직비디오나 그쪽은 누구 앨범을 했대, 무슨 CF 누가 한 거래’ 하면 사람을 대하는 눈빛이 확 달라지죠. 그걸로 자존감을 유지하고. 참 우습게 살았죠.(웃음)


김규항 = 이제 그쪽에서 선생을 이상한 사람으로 보겠죠?


이한주 = 그렇겠죠. 돈 벌리는 것, 유행하는 걸 배척하자는 게 아니라 그게 돌아가는 방식이 잘못되었다면 다른 방식으로 살아갈 방법을 고민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돈이 없으면 어떻게 사나 겁내기 전에 당연한 고민을 생략하면 내 삶이 무너진다는 걸 겁내야죠.


김규항 = 늘 사회적 관심이 많았던 편인가요.


이한주 = 원래는 사회 시스템이나 정치적인 것엔 정말 전혀 관심이 없었어요. 그런데 아까 말씀드린 대로 인터넷 시대가 되고 그와 결부된 여러 문제들을 구상하고 고민하면서 사회구조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죠. 친구들은 ‘넌 너무 정치적이야’라고 타박하기도 하지만 인터넷이든 예술이든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들어가다 보면 정치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죠.


김규항 = 그 후론 고객에게서 의뢰받은 일은 전혀 안 하나요?


이한주 = 제가 하고 싶거나 필요한 경우만 간간이 하고 있어요. 되도록 돈이 아니라 현물로 받구요. 상황버섯 농장 하는 친구 홈페이지 만들어주고 상황버섯술 받고, 음향기기 회사 일 도와주고 지금 요기가에서 쓰는 마이크하고 앰프를 받고.(웃음)


김규항 = 이상적인 거래군요.(웃음) 요기가의 운영 상태는 어떤가요.


이한주 = 적자 상태는 아닙니다. 전시나 공연이 많을 때는 다음달로 이월도 하면서 가고 있어요. 대학 강의를 나가니까 제 생활은 해결되고요.


지난달 강제추방된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 미누가 보컬로 활동했던 다국적 이주노동자 밴드 ‘스탑크랙다운’이 지난 28일 밤 서울 합정동 요기가갤러리에서 6주년 기념공연을 하고 있다. (출처 :경향DB)


김규항 = 실험예술이 ‘젊어 한때만 하는 일’이라면 아쉬운 일입니다. 동료들 사정이 저마다일 텐데 지속가능한 활동에 대한 고민이 있겠군요.


이한주 = 10여년 하다 보니까 생활 문제 때문에 떠난 사람들도 있었어요. 앞으로도 그럴 수 있는데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지금 동료들은 내내 즐기고 놀며 같이 가길 바라죠. 지속가능한 수익 모델을 생각할 필요가 있고, 새로운 방식의 콘텐츠 유통, 지역 사람들과 다른 방식으로 운영되는 인터넷 방송 같은 걸 구상하고 있어요.


김규항 = 콘텐츠도 거대 자본에 의해서 독점화되게 마련인데 아마추어나 프로의 구분 없이 재능 있는 많은 사람들이 개미떼처럼 참여하고 수익도 얻는 일이라면 좋겠네요.


이한주 = 음악의 경우 음원 자체는 모든 사람에게 무상으로 뿌려지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판매보다는 공연 자체의 가치를 중시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봐요. 월정액으로 후원계좌를 만들어서 그 회원들만 공연을 볼 수 있는 거죠. 예술가는 그들과 일상에서도 소통하고 공연도 하고 생활도 할 수 있고.


김규항 = 일종의 관람조합, 공연조합이군요. 예술가가 시장에 의해서 선택되고 서열화되는 구조를 넘어서는 시도일 수 있겠습니다.


이한주 = 음원은 무상배포하고 앨범은 회원 수만큼 만드는 거죠. 나는 음악만 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건 누군가 해준다고 생각하면 못하는 거구요.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게 중심이 되는 거죠.


김규항 = 사업 아이디어에 대해 더 자세한 이야기는 이쯤 하는 게 좋겠습니다. 자본 쪽에서 또 빼먹을 테니까요.(웃음) 


이한주 = 좋은 아이디어일수록요.(웃음) 사회시스템에 대해 공부하고 알아가다 보니까 어느 순간에 회의가 들기도 했어요. ‘이렇게 하면 뭘 하나 결국 이 시스템 안에서 노는 건데, 내가 죽기 전엔 달라질 게 없구나’ 이런 생각이오. 그러다 나중엔 ‘그래 나는 씨앗 역할이라도 하자. 그 다음에 하는 사람들이 그걸 또 일구고, 변형이 되어도 좋고’라고 생각했죠.


김규항 = 우리 사회는 현실주의자는 넘치는데 이상주의자는 씨가 말랐고 그래서 암담하죠.


이한주 = 저는 그나마 이런 일을 해서인지 이따금은 시스템을 비켜난 사람들을 만나곤 하는데 전에 어떤 목수분은 북한에서 살고 싶다고 하더군요. 나는 그냥 배급받고 내 능력이나 재능을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데 쓰고 싶다. 돈을 벌고 싶은 마음도 없고 먹고살기만 하면 되는데 그런데 여기는 먹고살려면 1만원짜리를 2만원짜리라 거짓말해야 한다고요. 


김규항 = 북한 사회에 대한 평가를 떠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가란 시장에서의 성패와 무관하게 가련한 존재죠. 실험예술가들은 그걸 벗어난 사람들이라 할 수 있지만, 어려운 예술이라는 선입견의 벽이 있는데요.


이한주 = 실험예술이나 즉흥공연이라는 게 관객과의 교감에 어려움이 있잖아요. 그걸 보완하는 시도를 해보고 있는데 얼마 전에 ‘타임라인 콘서트’라는 걸 했어요. 공연 중에 텍스트로 간단한 설명이 나오는 거죠. 관객과의 교감을 유지하고, 공연자가 혼자 필 받아서 엉뚱한 데로 달려가는 것도 방지하구요.(웃음) 반응이 꽤 좋았습니다.


김규항 = 그나저나 요기가에선 술을 안 팔더군요.


이한주 = 전에 팔아 봤는데요. 돈을 내고 술 사먹고 하니까 분위기가 지나치게 흐트러져요. 그래서 막걸리를 주기 시작했죠. 주면 고마워들 하면서 먹어요. (웃음) 최근엔 머그잔을 만들어서 그거 있으면 막걸리 무료, 없으면 나가서 사먹는 걸로 하고 있죠.


김규항 = 음악가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은 공연에 성공하거나 음반이 대박 났을 때가 아니라 친구들과 연주할 때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실험예술이야말로 사람 사이의 경계와 시장의 지배를 허무는 놀이일 수 있겠구나 싶습니다.


이한주 = 바로 그겁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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