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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노동의 고통스러운 현실, 아이들이 살 세상이기에 덮어둘 순 없죠”


노동 현실은 갈수록 어려워지는데 노동문학과 노동문제를 다루는 작가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건 애석한 일이다. 그런 현실의 한구석에 작지만 희한한 풍경이 있다. 일군의 어린이 책 작가들이 노동자들의 시위와 집회에 바리바리 짐을 싸들고 나타나는 것이다. 더 작가(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어린이책 작가모임)의 회원들. 


그들은 스스로를 ‘못난이들’이라고 부른다. 동화라는 장르가 대단한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것도 아니고 그들의 행동을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든 않든 상관없이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못난이들. 못난이 셋을 만났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어린이책 작가모임’(더 작가)의 김하은, 최덕규, 박효미 작가(왼쪽부터). 더 작가는 지금까지 민주주의, 재개발, 이주노동자, 비정규직 문제 등을 다룬 어린이책 <박순미 미용실> <비정규씨, 출근하세요?>를 내놓았다. (출처; 경향DB)



김규항 = 언젠가 비없세(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가입 단체 이름을 훑어보다가 더작가 이름을 발견하고 이게 뭘까 했는데 어린이책 작가들이라고 해서 놀랐어요. 처음엔 실제 작업보다는 운동에 전념하는 유별난 사람들이려니 했던 것도 같고요.(웃음) 2008년에 만들어졌는데 회원이 얼마나 되나요.


박효미 = 정회원과 준회원이 있는데요. 정회원만 200명 정도예요. 어린이책 작가 모임이니까 작가와 화가만 정회원 자격이 있어요. 습작생도 포함해서요. 아무리 이름난 평론가나 편집자들도 다 준회원입니다.(웃음)


김규항 = 그거 괜찮군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가보다 어떤 등급의 사람인가를 중시하는 세태 속에서요. 회원들의 정치적 성향은 어떤가요.


박효미 = 정치적인 성향은 크게 보면 비슷한데 스타일은 다양한 편이에요. 올봄에 쌍용차 와락에서 책읽어주기 모임을 했는데 그쪽에 열심인 분들은 시위나 집회엔 오지 않는 편이라든가. 그러나 적어도 두 가지는 공유하죠. 아이들이 좀더 행복해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어린이 책 쪽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동심천사주의’에 대한 반대. 


김규항 = 아이들에게 맑고 아름다운 것만 보여주고 들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많은 문제를 만들어내죠. 그쪽 작가들과의 관계는 어떤까요. 


박효미 = 오래 전에는 갈등도 많았다고 하는데 저희에 와서는 워낙 경계가 선명해져서요. 서로 만날 일도 없고 출판사도 갈리는 편이고.


김규항 = 사회에서 반공주의가 퇴조하듯 어린이 책에서 동심천사주의도 퇴조하는 것 같습니다. 더작가 이름으로 책을 두 권 냈는데 하나는 평화박물관에 또 하나는 비없세에 인세를 전액 기부했습니다. 이런 결정은 어떻게 합니까.


박효미 = 조직적 의결 같은 건 없어요. 저희는 정관이나 강령 같은 걸 가진 조직이 아니라 그냥 커뮤니티니까요. 네 명의 운영진이 할 일을 제시하면 동의하는 작가들이 자유롭게 참여하는 방식으로 진행합니다.


김규항 = 프로젝트로 움직이는군요. 조직의 체계는 있는데 실제 일은 제대로 안 되는 경우보다 낫습니다. 평화 문제를 다룬 어린이 책은 꽤 있었지만 비정규직 문제를 다룬 책은 없었어요. 


박효미 = 지난해 3월에 새 운영진이 만들어지면서 도움말을 구하려고 송경동 시인을 만났어요. 불안정노동철폐연대 김혜진 선생을 소개받았고 김 선생에게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세 번 강의를 들으면서 이거 책으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김규항 = 다들 비정규 비정규 하지만, 이게 자세히 들어가 보면 자본과 국가 측에서 워낙에 교활하게 만들어놓은 체계라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복잡하고 공부할 게 많잖아요. 


박효미 = 운영진 입장에선 해보자는 이야기는 나왔지만 안했으면 하는 마음도 컸어요.(웃음)


최덕규 = 저희가 작가들이다보니 보편적인 노동 문제에 대해 체험도 적어서 피상적으로 될까 걱정도 되었고요. 


김하은 = 작업을 준비하면서 실제 노동자를 만났을 때 그 삶의 고통이 주는 무게가 너무 컸어요. 나도 짓눌리는 느낌인데 이걸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작업을 대체 어떻게 하나 막막했죠.


박효미 = 결국 하게 된 이유는 하나였어요. 이 현실이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기 때문에 덮거나 미루어둘 순 없다.


김규항 = 우리 아이들은 대부분 시민이자 노동자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시민의식이나 시민교육 이야기는 많이 하지만 노동자 의식이나 노동 문제에 대해선 가르치지 않죠. 우리 교육에서 가장 큰 문제인데요.


김하은 = 책도 없고 학교 수업에서도 전혀 없어요. 엄마들이 아이 초등학교 들어갈 땐 다 일류대학에 가길 바라고 뭔가 남과는 다르게 살길 바라지만 그렇게 되는 아이는 반에서 고작 한명 될까 말까 하거든요. 저희 아이들에게 이야기하곤 해요. 이게 너와 네 친구들이 살 세상이다. 텔레비전 드라마에 나오는 화려하고 멋진 삶은 특별한 소수의 삶일 뿐이다. 늘 염두에 두고 있다가 어느 노동자들에게 어떤 문제가 생기면 저건 저 사람들이 뭘 잘못해서 그래, 잘 못 살아서 그래 강 건너 불구경하듯 생각하면 안 된다. 바로 네 문제이고 너희가 어떻게 할지 생각해야 한다. 


김규항 = 가정 노동교육의 모범사례입니다.(웃음) 고래가 벌이고 있는 아이를 살리는 7가지 약속 항목 중에 ‘아이와 노동자가 행복해야 좋은 세상입니다’라는 게 있는데요. 경향신문에 나갈 때 결국 ‘노동자’라는 표현이 빠졌지요. 편집부에서 독자들이 거부감을 가질 우려를 표시했고 저희도 시작이니 무난하게 가자고 수용했던 건데요. 조·중·동도 아니고, 경향 독자면 진보적인 편이라고 하는데도 아직 그런 형편이죠. 


경향신문, `고래가 그랬어 교육연구소'의 `아이를 살리는 7가지 약속' 캠페인 참가자들 (출처 : 경향DB)


최덕규 = 처음에 노동 이야기가 나와서 열댓명 작가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할 때도 의견 차이가 많았어요. 노동은 신성한 것이라는 작가들이 있었고 젊은 작가들 중에는 지금 현실에서 노동이 뭐가 신성하냐 그냥 돈벌이일 뿐이고 아이들도 일찌감치 그런 생각을 굳혀간다는 이야기가 많았고요.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과 아이들의 현실의 차이에 대해 더 고민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김하은 =이번 책을 읽은 아이들이 마트에서 일하는 분들이 전과는 달리 보이더라고 해요. 전엔 시식 코너에 놓인 먹을거리 이런 게 눈에 들어왔다면 이젠 일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대요. 우리가 이런 식으로 하나씩 아이들에게 던져주면 자라면서 더 깊게 생각하게 될 거라 기대해요.


김규항 = 노동 현실에 대해 적선의 관점과 연대의 관점이 있죠. 둘은 호의적이라는 점에서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가치인데요. 얼마 전 많은 사람들이 개탄했던 공지영씨의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관련한 일도 그 본질은 공지영씨가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연대가 아니라 적선의 태도를 가진 거였죠. 아이들에게 노동을 이야기한다는 건 결국 연대를 이야기하는 것인데요.


박효미 = 개인적으로 가장 고민스러운 문제인데요. 노동과 관련한 고통스러운 현실을 동화로 그리다보면 그 현실에서 살아가는 아이를 등장시키게 되거든요. 그 아이를 동정의 대상으로 만드는 건 제 스스로 용납할 수 없고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 고민하다가 원고를 버리는 경우도 많고요. 


김규항 = 심정은 이해하지만 버리진 말고 천천히 개비하시죠.(웃음) 실은 고래도 ‘어린이 노동 교과서’를 준비하고 있거든요. 유럽은 노동교과서가 없는 나라가 없고 심지어 미국도 사회 교과에 들어있던데 우리는 쌓여진 성과가 전무하다시피해요. 그래서 더 어렵고요. 마음이 급한 만큼이나 천천히 제대로 가려는 중입니다. 


김하은 = 그나마 아이들이 책을 좋아해주는 것 같아 다행이긴 해요. 저희 집 아이가 책을 주면 읽고나서 돌려주는 책과 돌려주지 않고 자기 책꽂이에 꽂는 책이 있는데 이건 책꽂이도 아니고 책상에 놓고 자주 보더라고요.


김규항 = 혹시 아이가 엄마의 의중을 살피는 건 아니겠죠?(웃음)


김하은 = 아니에요. 그렇게 눈치라도 보면 제가 편하게요.(웃음)


김규항 = 그런 말씀을 왜 드렸느냐면 우리 사회는 ‘좋은 어린이책’이라는 게 어른 기준이잖아요. 어른들이 아이에게 좋다고 여기는 책이 좋은 어린이 책이죠. 그래서 좋은 어린이책이라고 뽑힌 책들 중엔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거기에는 또 어린이책의 구매자가 어른이라는 부분이 분명히 숨어 있어요. 누구도 공공연하게 말하진 않지만 누구나 다 생각하고 마케팅의 기준이 되고 그러죠.


박효미 = 어린이 책의 음험한 이중성이죠. 


최덕규 = 저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이 좋은 어린이 책이라고 생각해요.


박효미 = 전 좀 달라요. 작가로서 제가 생각하는 좋은 어린이책은 이게 세상에 나올 만한 가치가 있는가가 중요해요. 그게 가장 중요하고 그 다음에 내 책이 어린이에게 갔을 때는 정말 재미있어야 한다. 그런데 재미가 블록버스터 영화처럼 자극적인 재미만 있는 게 아니라 다른 거죠. 저희 아이도 자라면서 그래요. 정말 좋은 책은 나중에도 생각이 나. 그런데 너무나 재미있게 읽은 어떤 책은 생각이 안나. 


최덕규 = 동의해요. 가치가 중요하죠. 그런데 그런 판단의 주체는 결국 아이라는 것이죠. 어른이 볼 때는 조금 유치해도 아이가 재미있게 본다면 그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는 거죠.


김하은 = 두 분 이야기를 하나로 묶으면 되겠는데요.(웃음) 저는 언제나 가장 좋은 책은 불편을 주는 책이라고 생각해왔어요. 한번 더 생각해보게 만들어주는 책. 어린이 책에선 그런 책이 참 적다가 근래 늘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그런데 여전한 흐름도 있죠. 엄마들이 도서관에 학교에서 나눠준 도서목록을 갖고 와요. 그런데 그 목록이 십몇년 전 그대로예요. 너무 한심해서 힘이 빠지죠.


김규항 = 한심한 목록도 문제지만 목록이라는 것 자체가 가진 폭력성 같은 것도 있지 않나요. 저는 개인적으로 도서목록을 만드는 사람들의 용기가 잘 이해가 안갈 때가 있어요. 부러운 건가?(웃음)


박효미 = 그런데 그나마 목록이라도 없으면 그냥 마케팅으로 가버리거든요. 


김규항 = 그 역시 목록 아닐까요. 시장의 목록. 예전에 권정생 선생이 당신 책이 <MBC 느낌표>라는 프로그램에 선정된 걸 거부하면서 그런 말씀을 하셨죠. “왜 텔레비전이 서점에서 스스로 책을 고르는 즐거움을 빼앗으려 하는가.” 선생의 우려는 현실에서 충분히 나타나고 있죠. 사람들은 베스트셀러 작가의 것이거나 광고가 많이 나는 책 아니면 잘 안 사려 해요. 시장의 목록에 사로잡힌 거죠.


박효미 = 스스로 책을 고르는 힘이 적어지니까 책에 대한 인식 수준도 떨어져요. 동화와 관련한 어머니들 모임에 강연을 가보면 그런 걸 체감하곤 해요. 심지어 ‘전집이 뭐가 나쁘냐’고 말하는 분들도 오랜만에 다시 만나고 있고요.(웃음)


김규항 = 시를 쓰다가 마흔이 넘어 어린이책을 시작한 어느 작가분이 그러시더군요. 아이들을 대상으로 작품을 쓴다는 게 속으로 한번 삭이는 과정이 필요해서 젊었을 때는 어려웠던 것 같다. 어린이 책 작가가 갖는 고유한 고뇌가 느껴졌어요.


김하은 = 작품을 쓰다보면 나에겐 없다고 생각했던 게 발견되거나 폭로되죠. 나는 이거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는데 어느새 주인공이 그렇게 간다거나. 내 어떤 부분이 그걸 따르고 있는 거죠. 그걸 아이들에게 드러낸다는 게 겁이 나서 미뤄놓거나 포기하기도 해요. 그런데 그게 쓸 때는 잘 모르는데 꼭 써놓고 보면 드러나요.(웃음) 


박효미 = 아이가 항의도 해요. 책 죽 읽어보고 작가의 말 읽어보고 ‘엄마는 왜 우리한테 이러지 않으면서 이렇게 쓰느냐’ 막 그러고.(웃음)


김규항 = 진보적인 부모들이 귀가 쫑긋할 이야기군요.(웃음) 그럴 땐 어떻게 하세요. 


박효미 = 아이의 항의를 인정하고 그러죠. 엄마가 완벽하다는 게 아니다, 엄마도 생각과 행동이 다른 점이 여전히 많다, 다만 어떻게 생각해야 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방향을 갖고 있고 노력하는 거다. 


김하은 = 저희 같은 사람들 아이들은 일찍부터 보고자란 게 있어서인지 대개 호락호락하지 않아요. 수긍이 안되는 상황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죠. 저희 아이도 언젠가 한번 학교 선생님이 아이가 부담이 되었는지 너희 어머니 뭐하니 하더래요. ‘글 쓰시는데요’ 하니까 ‘아 그렇구나’ 하시더래요.(웃음)


김규항 = 저도 사회문제를 비판하고 하지만 그런 의견과 실제 삶이 일치하는지 영판 다른지 아이들이 늘 보잖아요. 그 눈치를 보며 조심조심 살다보면 사람 꼴을 잃지 않고 사는 데 여간 도움이 되는 게 아니에요.(웃음) 동심이라는 건 참 무서운 거죠. 


김하은 = 동심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해요. 


박효미 = 동화를 쓴다고 하면 동심이 살아있구나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그 동심은 언제나 동심천사주의를 전제로 하죠. 동심이란 벌거숭이 임금님을 보고 벌거숭이라 말하는 건데요.


최덕규 = 동심을 순수라고 하는데 동심은 오히려 거침없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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