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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애도기간을 선포했지만
애도의 고민은 찾아볼 수 없었다

슬프지만 이 세상이 살 만하다는
그런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
제대로 된 사회적 애도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이 세상에서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흔히 하는 말이다. 세상을 떠난 이에 대한 지나친 애착은 살아남은 자를 때로 병들게 한다. 이 세상에 남겨진 자들이 이전처럼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슬픔에서 벗어나 새롭게 사랑할 대상을 찾아야 한다. 이렇게 떠난 이에 대한 애착에서 벗어나 다시 애착을 가질 새로운 대상을 이 세상에서 찾는 일, 이것이 정신분석가 프로이트가 말하는 ‘애도’다.

하지만 철학자 데리다는 이런 애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이 세상을 떠난 이에 대한 애착을 끊어내는 일, 그 사랑을 새로운 대상에 옮겨놓는 일은 사랑하는 이에 대한 헌신을 버리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누군가를 사랑했다면 그 존재는 죽음으로도 비워낼 수 없다. 그래서 데리다에게 애도란 ‘부재한 자에게 여전히 애착을 지니고 기억하는’, 프로이드의 관점에서 보면 실패한 애도다.

이렇게 애도에 대해 언급하는 이유는 바로 이태원 참사 이후, 애도란 무엇인지 고심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자가 가진 가치에 따라 누군가는 프로이드의 애도를, 누군가는 데리다의 애도를 더 바람직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 우리가 바라는 애도는, 참사에서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이 떠나보낸 이에 대한 사랑과 기억을 간직하면서도 이 세상과 여전히 긍정적인 관계를 맺는 방향일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개인적으로는 사회가 이런 애도에 함께하려 한다면 몇 가지 할 일이 있다고 본다.

우선 어떻게 이런 참사가 빚어졌는지에 대한 정확한 사실 및 원인 규명이다. 정확한 사실 규명은 남겨진 이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이 세상에서 떠나보내는 첫 번째 조건이다. 우리 중 어떤 누구도 사랑하는 사람이 왜, 어떻게 이 세상을 떠나야 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 채 떠나보낼 순 없다. 이를 명확히 모른 채 보내야 한다면 살아남은 이들에게 그 죽음은 결코 해소될 수 없는 억울한 희생으로 영원히 남겨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실 규명과 함께 필요한 일은 참사와 관련이 있는 이들이 책임을 지는 것이다. 이런 책임은 단지 법적인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회적 재난에는 법적 책임 외에도 정치적·행정적 책임이 뒤따른다. 특히 이태원 참사 같은 경우 현실적으로 그 어느 곳보다 안전해야만 할 국가의 수도 한가운데서 일어났다는 점에서 국가의 행정 책임자와 관련 지자체장들은 그 책임을 결코 면할 수 없다. 책임져야 할 사람이 책임지지 않는다면 참사에서 희생된 이들의 생명은 무책임한 죽음이 되고 만다.

더하여 재난에 대한 진정한 사회적 애도는, 다시는 그런 참사가 반복하지 않도록 미리 방지하는 것이다. 재난으로 인해 희생된 이들은, 결코 스스로는 의도하지 않았으나 우리에게 다시는 이런 참사가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유서를 남긴다. 그 유서를 대하는 사람들의 진정성은 재난을 예방하려는 의지와 실천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국가는 남겨진 사람들의 의지와 실천을 대표해 구현하는 최종적 의무를 진다.

이렇게 본다면 이번에 일어난 이태원 참사는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사회가 애도에 함께하는 일에 실패했음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유가족들이 수긍할 만한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실규명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더하여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책임 있는 자들이 책임을 지기는커녕 오히려 줄줄이 승진했다는 것은 여러 언론 보도를 통해 이미 알려진 바 있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채 10년이 되지 않아 이태원 참사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결국 우리의 사회적 애도는 온전히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이 애도의 실패가 국가의 실패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한 사회에서 사회적 참사가 계속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단지 그 사회가 애도에 실패했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원인과 사실을 규명하는 일, 책임을 지우는 일, 심지어 사고를 방지하는 일마저 고스란히 참사에서 사랑하는 이를 직접 잃은 유족들의 몫이 된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이 세상은 이미 의미 있는 삶의 터전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태원 참사 후 정부는 애도기간을 선포했지만, 제대로 된 애도의 방향이나 방법에 대한 고민은 찾아볼 수 없었다. 사회적 애도는 단지 함께 슬퍼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 애도는 지극히 슬프지만 남겨진 누구라도 이 세상이 여전히 살 만하다는, 그런 가치를 실현하는 일이다.

<김만권 경희대 학술연구교수·정치철학자>

 

 

연재 | 김만권의 손길 - 경향신문

 

www.kh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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