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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의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올림픽이 무용하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은 꽤 오래전의 일이다. 이들이 올림픽을 반대하는 이유는 올림픽을 한 번 개최하기 위해 너무 많은 자원이 투입된다는 것이다. 여러 개의 대형 경기장과 선수촌을 세워야 하고, 올림픽이 끝나면 그 건물들을 유지하는 데 또 돈이 들어간다. 얼토당토않은 주장은 아니다. 친환경이 시대정신인 만큼 자원 낭비와 환경 파괴를 최소화하는 올림픽을 고민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올림픽에 반대한다는 것은 비슷하나, 이유는 전혀 다른 경우도 있다. 개별 국가 차원에서 정치적인 이유로 올림픽을 보이콧하는 것이다. 2020 도쿄 올림픽을 보이콧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국내에 있었다.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가 홈페이지에 독도를 일본 영토로 표시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여권 대선 예비후보들이 앞다퉈 보이콧을 주장했다. 독도는 한국인 정서의 기저를 건드리는 문제이자 심각한 외교적 사안이니 민심을 얻으려는 사람들로선 무슨 말이든 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그 말을 꺼낼 때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서 땀 흘리고 있는 선수들의 심경을 고려했는지는 의문이다.

결과적으로 한국 선수단은 도쿄 올림픽에 참가했다. 그리고 참 잘했다. 양궁 3관왕 안산, 2관왕 김제덕뿐만 아니라 메달 획득을 예상하지 못한 종목에서 메달리스트가 나왔고, 결선 통과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본 종목에서 메달권에 성큼 다가서는 선수들이 튀어나왔다. 근대5종의 전웅태는 개인전에서 깜짝 동메달을 수확하며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떨쳐냈다. 육상에선 우상혁이 높이뛰기 한국신기록(2m35㎝)을 세우고 4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는 올려다보지도 못한 2m39㎝를 올림픽에서 시도했다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보는 사람까지 즐겁게 만드는 긍정의 에너지를 뿜어냈다. 이 밖에도 수영 황선우, 다이빙 우하람, 클라이밍 서채현 등이 2024 파리 올림픽을 기대하게 하는 활약을 펼쳤다.

감동의 화룡점정은 여자배구가 찍었다. 슈퍼스타 김연경을 필두로 하는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은 세계랭킹 14위의 어중간한 전력을 갖춘 팀이었다. 그런데 조별예선에서 일본에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고 8강에 오르더니, 풀세트 접전 끝에 터키를 꺾고 4강에 진출했다. 메달 없이 4위로 대회를 마쳤지만 여자배구 대표팀은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올림픽 정신의 아름다움을 보여줬다.

독도 사태로 술렁이는 민심에 올라타려던 정치인들은 여론이 올림픽으로 향하자 이번엔 올림픽 스타들에게 숟가락을 얹었다. 이들은 김연경의 투혼에서 감동과 깨달음을 얻었다고 일제히 고백했다. 올림픽을 보이콧하자고 했던 정치인들이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따 온 열매를 나눠 가지려 했다.

불과 6개월 후인 내년 2월엔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열린다. 미국 정계와 언론에선 중국의 인권 상황을 문제 삼아 동계올림픽을 보이콧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미국이 강하게 밀어붙인다면 한국도 입장을 정해야 하는 상황에 몰릴 수 있다. 미·중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다가 어떤 결론을 내리든 간에 가벼운 결정은 아니어야 한다. 도쿄 올림픽의 감동에 묻어 가려고 했던 사람들이라면, 동계올림픽을 준비하는 선수들의 마음도 고려하는 예의를 보여주리라 기대한다.

최희진 스포츠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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