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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가석방된 후 삼성전자 서초사옥을 방문한 것을 두고 취업제한 위반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 부회장은 지난 2월 국정농단 사건으로 징역 2년6개월이 확정되면서 취업제한 통보를 받은 터였다. 취업제한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가법) 위반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이 형 집행 종료 후 5년, 집행유예 종료 후 2년 동안 관련 기업에 취업할 수 없다는 규정이다. 법무부는 지난 20일 이 부회장이 미등기 임원이기 때문에 경영활동을 해도 취업제한 위반이 아니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2017년 ‘촛불 민심’을 등에 업고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재벌개혁 과제 중 하나로 이 취업제한 조항의 실효성을 높이려 했다. 그 성과가 2019년 5월의 특경가법 시행령 개정이다. 이전엔 취업제한 기업이 ‘공범과 관련된 업체’ ‘재산상 이득을 취한 업체’ 등으로만 규정돼 기업 총수의 단독 범행이면 공범이 없어 취업제한을 할 수 없는 문제가 있었다. 정부는 취업제한 기업에 ‘범죄행위로 재산상 손해를 입은 기업체’를 추가해 법망을 촘촘히 했다. 시행령 개정 이유로는 ‘취업제한 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한다’고 적혀 있었다. 김상조 당시 공정거래위원장은 문재인 정부의 재벌개혁 의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이 시행령 개정을 꼽았다.

그런데 ‘취업제한 제도 실효성’의 발목을 잡는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취업제한을 받은 총수가 미등기 임원으로 계속 기업을 지배하는 행태였다. 하지만 법무부는 이러한 행태가 취업제한 위반인지 해석하지 않고 사실상 묵인했다.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은 2018년 가석방된 후 취업제한 상태에서 등기를 하지 않았을 뿐 상근도 하고 보수도 받았지만 법무부의 제재를 받지 않았다.

한국의 기업 총수에겐 등기 여부가 중요치 않다. 미등기 임원이어도 경영권한을 잃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CXO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200대 그룹 총수 중 4분의 1이 넘는 54명(27%)이 그룹 내 상장사에 등기를 하지 않았다. 미등기 상태로 기업을 지배하는 총수가 많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등기 여부로 취업을 판단하는 것이 맞는 걸까. 특경가법상 취업제한 대상은 대부분 총수 일가이거나 총수 일가를 위해 범죄에 가담한 임원들인데 말이다. 법무부는 ‘미등기 임원은 이사회 선임 절차를 거치지 않고 형식적·명목적으로 직함을 받았기 때문에 상법상 이사로서의 직무권한을 행사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들었다. 미등기 임원은 상법상 직무권한이 없으니 취업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경가법의 취업제한을 해석하려면 상법이 아니라 같은 특경가법의 해석을 따라야 하지 않을까. 만약 회삿돈 100억원을 빼돌린 혐의(특경가법상 횡령)를 받는 대기업 총수가 자신은 미등기 임원이라 그런 결정을 내릴 직무권한이 없다고 하면 검찰과 법원이 믿어줄까. 그 말을 믿기보다 실제 누가 경영상 판단을 내렸는지 추적하고 엄밀히 판단할 것이다. 그런데 재범 피해를 막기 위해 같은 법에 넣은 취업제한 조항을 해석할 땐 실제 일을 하는지 따지지 않고 ‘미등기 임원이면 괜찮다’고 한다. 그 덕에 취업제한에 걸릴 위험에 처했던 총수 일가는 ‘등기만 안 하면 하던 대로 해도 된다’는 대안과 예측 가능성을 얻었다.

조미덥 산업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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