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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을 배경으로 글을 쓸 일이 있어서 당시 신문을 살펴보았다. 굳이 오래된 기사를 읽어 기억을 환기시키지 않더라도 1994년은 여러모로 기억에 남아있는 한 해이다. 그해에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고, 대만과 우크라이나에서 비행기가 떨어져 수많은 승객들이 목숨을 잃었고, 성수대교 붕괴와 아현동 가스폭발 사고가 있었고, 지존파 사건이 있었다. 그런가하면 팝 가수 커트코베인이 유명을 달리했고, 자살골을 넣은 콜롬비아 축구선수가 12발의 총격을 당해 죽었다. 1994년은 또한 역사적인 폭염으로 사람들에게 고통스러운 기억을 남겼다. 그때만 하더라도 좀 사는 사람들이 아니면 에어컨을 설치하고 사는 게 그리 일반적인 일은 아니었다. 관측소가 생긴 이래로 매일같이 최고기온의 기록을 갈아치우던 그해 여름, 노약자들이 더위를 못 이기고 사망에 이르는 일들이 속출했다.

출처:경향신문DB

사건 사고는 지나가기도 하고, 또 새로운 사건 사고로 대체되기도 하지만 폭염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감당이 안되는 속수무책의 일이었을 것이다. 1994년의 폭염을 직접 겪지는 못했다. 그해에 나는 해외에 있었고, 그것도 남반구의 나라에 있었다. 7, 8월이 한겨울인 그 나라에서 교민 소식지를 통해 우리나라의 사건 사고 소식과 폭염 소식을 읽곤 했다. 인터넷도 존재하지 않았던 그 시절, 해외에서 사는 교포들은 국내 신문을 구독하는 것보다 생활정보지에 실린 단신들로 소식을 접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일주일인가 2주일에 한 번씩 무료로 배포되던 소식지에는 매번 경악스러운 기사들이 실렸다. 소식지의 단신이라는 것이 그야말로 간략하기 그지없는 것이라 상세한 내용을 알지 못해 덜 충격적이었는지, 아니면 혼자 상상해야 하는 빈틈이 너무 많아서 더 충격적이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아마 후자였을 것이다. 성수대교 붕괴 기사를 보면서는 믿을 수 없었고, 지존파 기사를 볼 때는 정보지에서 만들어낸 과장 기사일 거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폭염이 이어진 18일 서울 경복궁을 관람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부채, 양산, 선풍기 등을 이용해 더위를 식히고 있다. 김창길 기자

폭염은 기사보다 전화로 더 자주 접했다. 부럽다는 말을 그때처럼 많이 들어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겨울인 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해 정보지로만 접했던 기사들을 오래된 신문을 통해 다시 살펴보면서 그해의 폭염이 새삼스러워졌다. 7, 8월에는 살인더위라는 제목이 붙은 기사가 가장 많이 보였다. 온열질환이 급증하고, 가축은 폐사하고, 가로수도 죽고, 어느 기관의 중앙전산망은 작동을 멈춰버렸다는 기사들이다. 흥미로운 기사도 보인다. 그해 7, 8월에 범죄율이 뚝 떨어졌다는 것이다. 범죄자들까지 더위를 못 이겨 잠시 범죄를 쉬었다는 뜻이다. 통계가 항상 진실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범죄율이 떨어진 것은 통계적으로 사실일지 모르지만, 그게 더워서 그런 거라고 판단하는 것은 너무 더운 나머지 얻게 된 결론이었을 듯싶다.

그해에 구속된 영생교 교주는 자기가 감옥에 있는 탓에 나라가 그렇게 더운 거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감옥에 있으니 하나님하고 통할 수가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더위에 잠깐 헛웃음이라도 웃게 하는 기사였을 것이다. 어이없어 웃고나서 기분이 나빠지는 게 아니라 정말로 기분이 좋아지는 기사도 없지 않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7월27일 프로야구 선수 박철순은 최고령 완봉승이라는 기록을 수립했다. 나는 박철순 선수의 팬이었다. 정보지에서는 보지 못했던 그 기사를 그해에 보았다면 아마도 먼 나라에서나마 한껏 함성을 질렀을 것이다. 아무리 더워도 시즌은 계속되고, 누군가는 기록을 세우고, 그 아름다운 기록으로 사람들을 감동하게 한다. 말하자면, 아무리 더워도 삶은 계속된다.

1994년에만 폭염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해에 하도 사상 최고, 유사 이래, 그런 제목의 기사들이 많아서 사람들의 기억에 더 많이 남게 되었을 것이다. 그해에 벌어졌던 재앙과 같은 사건들이 또 기억에 남아 그 폭염과 얽히게 되었을 것이다. 데이터베이스화되어 있는 뉴스 기사는 검색하기가 편리해서 날짜와 검색어를 입력하면 그 결과들이 컴퓨터 모니터에 주루룩 뜬다. 그해 여름을 기간으로 설정하고 검색어로 ‘훈훈한’ ‘감동’ 그런 제목을 입력해보았다. 올해도 이렇게 더우니, 잠깐 읽는 글이라도 뭔가 좀 시원한 내용이 있었으면 좋겠다 싶어서였다. 안타깝게도 훈훈하고 감동적인 기사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더워서 범죄자들이 범죄를 멈췄다고 말하는 것처럼 훈훈하고 감동적인 일도 잠시 멈췄던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훈훈하고 감동적인 일이라는 게 기사화될 일이 아니어서뿐일 것이다. 그런 일들은 그냥 소소하게, 일상 속에서 일어난다. 손뼉치고 환호할 일만 감동적인 것은 아니다. 그저 잠깐 미소짓고, 선선한 바람을 맞은 듯이 기분이 좋아지고 그러는 일들은 그냥 내 주변에서 일어난다. 생각보다 빨리 도착한 택배, 친절한 에어컨 수리기사님, 평양냉면의 차가운 육수 맛, 그 냉면을 같이 먹던 남북 정상의 모습을 기억하는 것, 엘리베이터에서 배꼽인사를 하는 옆집 아이, 시원하게 쏟아지는 소나기, 옛날 빙수, 겨울에 가족과 함께 갔었던 추운 여행지에서의 추억, 기타 등등.

1994년 7월15일자 경향신문에는 동물 가족들의 여름나기에 관한 기사가 보인다. 북극곰은 6월이 되면 털갈이를 해서 여름을 대비한다고 한다. 그러나 대비한다고 해서 더위를 모두 피할 수 있는 건 아닐 터이다. 보통은 냉수욕으로 체온을 식혀 더위를 견디지만, 그렇게 해서도 안될 때는 견디지 못하고 트위스트 춤을 추게 된단다. 좋고 신나서 추는 춤이 아니다. 사람들 눈에는 춤으로 보여도 그게 실은 몸부림이라는 뜻이다.

진작부터 시작된 폭염이 올해는 한 달 이상 가게 될지도 모른다고 한다. 각오부터 단단히 해야 할 일이다. 불쾌한 일들이 있으면 솜털을 벗어내듯이 벗어내고, 몸부림을 칠 정도로 더울 때는 소소한 기쁨들을 생각해볼 일이다. 몸부림치며 비명을 지르기보다는 차라리 트위스트라도 춰볼 일이다. 그래서 오늘 일어날 좋은 일을 생각해보기로 한다. 택배가 오기로 되어 있다. 그 초인종 소리, 아주 잠깐이나마 기분이 좋아질 게 틀림없다.

<김인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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