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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문화와 삶

김일성 가면

opinionX 2018. 2. 22. 15:37

1963년에 부산 영도구 동삼동 바닷가 조개더미에서 선사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조개껍질 하나가 발견되었다. 까마득한 세월을 이기고 살아남은 그 조개껍질에는 사람의 얼굴을 연상시키는 구멍이 세 개 나 있다. 마치 사람의 눈과 크게 벌린 입처럼 보이게 만든 구멍으로 인해 흡사 비명을 지르거나 무슨 말을 하고 있는 듯한 얼굴이 연상되었다. 속살을 발라먹고 내다 버린 조개껍질 따위를 한군데에 차곡차곡 쌓은 조개더미를 패총(貝塚)이라고 하는데 바로 그곳에서 나온 이 조개껍질은 아마도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얼굴 이미지이자 최초의 미술작품(?)일 것이다. 일종의 이 가면은 길이가 11.5㎝라 실제 사용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신을 부정하고 초자연적인 힘에 의해 신으로 변신하고자 했던 당시에 도구적 기능을 지녔던, 주술적인 용도로 쓰였던 가면으로 추정된다.

가면은 특정 물질로 만든 도구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무용, 주문, 의식으로 이루어진 복합 의례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힘차고 동적인 물건이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가면이 죽은 사람에게 영원한 젊음을 부여해 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가면 속에서 비로소 영생과 불사를 간직할 수 있었으며 내세의 영원한 복락을 보장해 주었던 것이다. 고대 희랍에서는 죽은 사람을 보호하고 내세로 가는 여행을 도와주기 위해 지옥의 여신 페르세포네의 가면을 죽은 사람의 얼굴에 씌웠다고 한다. 옛날부터 티베트와 부탄에서는 머리 전체를 시체에서 떼어서 고인의 귀한 유물로 보존해왔다고 한다. 시체는 새들에게 먹이로 주지만 머리는 신성한 가보로 언제나 보존한 것이다. 또한 헤로도토스에 의하면 고대에는 패배한 적의 머리를 정복자의 집에 걸었는데, 그 머리가 ‘그 집을 지키는 마력’을 갖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란다. 그러니까 적의 영혼이 머리에 들어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처럼 옛사람들은 영혼이 얼굴 속에 있다는 것을 믿었으므로 신과 정령의 형상을 얼굴 모습으로, 가면으로 만든 것도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가면은 본래의 몸을 지우고 또 다른 존재로 비약하거나 현세의 얼굴이나 육체를 대신해 초월적인 존재로 비상하고자 하는 욕망의 산물이다. 그것은 실제의 얼굴을 지우고 다른 얼굴로 대신 살아가는 일이다. 그러니 가면이란 버릴 수 있는 얼굴을 말한다. 가면은 우리의 흔들리는 얼굴을 가리고, 낯설고 고정된 모습을 선사한다. 이는 자신이 그곳에 있음을 부정하는 것이다.

얼마 전 가면을 둘러싼 해프닝이 있었다. 지난 2월11일 관동하키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조별예선 코리아-스위스 경기에서 북한 응원단이 김일성 가면을 쓰고 응원을 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물론 이내 오보로 판명 났다. 그러나 자유한국당 전희경 대변인은 이날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김일성 가면 쓰고 응원하는 북한 응원단”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공유하면서 “정부가 이를 결코 몰랐을 리 없다. 저 흉물스러운 것을 응원 도구라고 허락했나? 남북 단일팀 밀어붙이기로 우리 선수들 기회를 박탈한 것도 모자라 경기장에 김일성 가면 쓰고 응원?”이라고 질타했다. 이어 “선수들과 관중들이 경기 안 일으킨 게 다행이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벌이지 못하는 일이 없구나.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누가 협조하고 누가 기획했는지. 대한민국 무너지는 소리가 평창의 응원소리보다 높구나”라고 말했다. 그런가하면 하태경 바른정당 최고위원은 “북한 응원단이 대놓고 김일성 가면 쓰고 응원한다. 여기는 평양올림픽이라고 생각하는 거다. 한국 대통령이 얼마나 우스웠으면 김일성 가면을 감히 쓸까”라며 “평양올림픽의 말로를 본다”고 질타했다. 그리고 이는 김정은의 지시가 아니면 결코 가능하지 않은 일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오래전 신학철의 ‘모내기’ 작품을 놓고 김일성의 생가를 그린 것으로 북한 체제를 찬양한 그림이라고 해석한 공안 검사들의 시각이 연상되는 발언들이다. 이처럼 이미지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읽고 싶은 대로 읽어대는 이 막무가내식의 감상법에 대해 그저 말문이 막힐 뿐이다.

<박영택 경기대 교수·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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