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일반 칼럼/문화와 삶

이름의 무게

opinionX 2018. 2. 1. 15:11

그는 이렇게 말했다. “프랜차이즈 업체의 커피가 강배전으로 쓴맛만 내는 것은 커피가 식었을 때에조차 그 잡내들을 숨기기 위한 것이다.” 그는 후일 프랜차이즈 커피 광고에 출연했다. 그는 설탕에 대해 “무뇌아적 중독을 일으키는 ‘환상’의 맛”이라고, 고추장에 대해 “맛을 얼버무리기 위한 술책”이라고 썼다. 설탕과 고추장의 조합인 떡볶이 광고에 출연했다. 방송에서도 “길들여진 맛”일 뿐이라며 단호하게 말했던 떡볶이다. 맛칼럼니스트 황교익 얘기다. 먹방, 쿡방은 여러 스타를 만들어냈다. 요리사와 사업가가 대부분인 가운데 황교익은 직접 음식을 만들지 않는 사람으로서는 유일하게 유명세를 탄 인물일 것이다. 기자로 재직하는 동안 전국을 누비며 보고 먹은 식재료에 대한 지식, 유려하고 또렷한 문체로 이미 팬이 적지 않았던 그다.

칼럼니스트 황교익(왼쪽부터), 유시민 작가, 장동선 박사, 건축가 유현준, 가수 유희열이 2017년 10월 2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타임스퀘어에서 열린 tvN '알쓸신잡2'(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제작발표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방송을 타며 날개를 달았다. <수요미식회>에 이어 <알쓸신잡>까지 히트했다. 대중에게 가장 친숙한 음식 권위자이자 전문가가 됐다. 무거운 이름이 됐다. 이름에 무게가 생기면 신중해지기 마련이다. 가볍게 소비되는 연예인이 아닌, 전문가라면 더욱 그렇다. 직업윤리가 따르기 때문이다. 황교익의 최근 행보는 그래서 실망스럽다. 떡볶이가 맛없는 음식이라고 하는 건,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다. 음악평론가인 내가 차트 1위를 하는 곡이 음악적 완성도가 떨어진다 말할 수 있는 것과 같다. 평론가의 기준은 상업적 잣대와는 다를 수 있다. 영화를 고를 때 차트나 입소문 말고도 굳이 영화 평론가의 리뷰를 찾아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뭔가에 대해 말해서 업을 일구는 사람에게 논란이란 일종의 세금과 같다. 논란이 주장 그 자체일 때는 큰 문제가 없다. 다만 그 주장의 앞뒤가 다를 때 일이 벌어지는 법이다. 고추장과 설탕의 황금 조합인 떡볶이, 방송에서 맛없는 음식이라 설파했던 그 떡볶이 광고에 본인이 출연한 걸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광고료라고 말하기에는 민망한 조금의 사례비를 받고 찍은 것”이라며 “불우 어린이 돕기에 응해줬던 회사이기 때문에 고마운 마음에 찍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의 해명은 문제의 본질에서 비켜 있다.

광고를 볼 때 모델이 얼마를 받았는지 따져가며 보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그 광고에 출연한 배경을 궁금해하는 사람은 더욱 없을 거다. 전문가가 광고에 출연했을 때 발생하는 상품의 신뢰도는 연예인의 그것과는 다르다. 이를 모르고 ‘선의’로 출연했다면 순진무구한 거고, 알면서도 했다면 자기기만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오랫동안 언론에 몸담았던 그가 몰랐을 것 같지는 않다. 그 뒤 다시 내놓은 입장이 점입가경이다. 이명박 정부의 한식 세계화 정책으로 떡볶이가 국민 간식의 자리에 올랐다는 것이다. 이 지점이 대단히 아쉬웠다. 전형적인 진영론자의 대처지, 평론가이자 전문가의 말은 아니다. 백번 양보해도 이명박근혜 정부 이전에도 떡볶이는 대표적인 한국의 간식 아니었던가? 사실 이 모든 게 그가 떡볶이 광고만 찍지 않았어도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을 하나 꼽자면, 한결같이 사는 거라 말하고 싶다. 우리가 그런 이들을 존경하는 이유는 그만큼 쉽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1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 아닌가. 좋은 어른이 된다는 건, 과거의 언행과 지금의 처신이 맞지 않을 때 비판을 겸허히 수용할 줄 아는 거라고 생각한다. 이름에 무게가 더해질수록 그런 태도가 더욱 필요하다. 비판의 방향을 호도하고 궁색한 변명으로 일관하며, 진영론으로 대처하는 게 어른의 자세는 아니다. 전문가의 자세는 더더욱 아니다. 그와 함께 <알쓸신잡>에 출연한 정재승 박사는 밀려드는 CF를 모두 고사했다고 한다. 부끄러워서였다고 하지만 광고와 전문가가 만났을 때 파급되는 효과를 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유시민 작가도 유희열에게 “광고는 신이 주는 선물”이라는 말을 듣고도 광고 섭외를 거부했다. 그리고 장애인들이 만든 구두 홍보를 위해 처음으로 CF를 찍었다. 무게가 있는 이름이란 그렇게 쓰는 것 아닐까.

<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