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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에 있는 서울시교육청과 서울복지재단을 조금 지나 오른쪽으로 비탈진 길을 올라가면 월암근린공원이 나온다. 인왕산 가는 길 주택가 골목길로 이어지는 이 공원은 한쪽 면이 복원된 서울 성곽이 감싸고 있는 호젓한 곳이다. 가끔 점심시간에 짬을 내 인왕산길로 산책 갈 때 이곳 벤치에 앉아 건너편 영천시장과 금화산을 바라보며 다리쉼을 하곤 한다. 어느날 이 공원에 들어섰을 때 부엉이 소리, 정확히는 부엉이 소리처럼 들리는 소리가 났다. 인왕산 자락이니 부엉이가 살지 말라는 법도 없으리란 생각이 들었지만 부엉이는 보이지 않았다. 몇 번의 같은 경험 끝에 부엉이 소리가 나는 곳을 알게 됐다. 이곳엔 폐쇄회로(CC)TV가 2대 설치돼 있는데, 원형 카메라로서 회전이 가능하다. 카메라는 사람의 움직임을 포착하면 그쪽으로 방향을 돌리는데 이때 ‘부엉~’하는 소리가 나도록 돼 있는 모양이었다. 경찰 순찰차가 경광등을 켜 잠재적 범죄 용의자들에게 ‘경고’를 보내는 것과 마찬가지 이유로 CCTV가 돌아갈 때 소리가 나게 한 것이리라.

도심 속 호젓한 공원에 사는 부엉이에 대한 환상이 깨진 뒤로도 쇠기둥 끝에 매달린 CCTV는 부엉이 소리를 내며 성실하게 내게로 시선을 돌린다. 밤에 홀로 이곳을 지나거나 여성처럼 완력이 약한 사람들은 CCTV가 보내는 시선에서 안도감을 느낄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이 카메라가 그리스 신화 속 거인 키클롭스의 부리부리한 외눈 같다는 생각이 떠올라 찜찜했다. CCTV 너머에서 내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내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거나, 어떤 장치에 기록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원초적인 불쾌감이다.

CCTV는 현대인의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요소가 돼 버렸다. CCTV는 치안과 방범, 안전 등 다양한 명목으로 전국을 촘촘하게 촬영하지만 본질은 싼값에 효율적으로 감시하는 것이다. 골목길의 CCTV는 이곳을 지나는 사람이 못된 짓을 하는지 감시하고, 시내버스에 설치된 CCTV는 승객이 요금을 안 내는지, 다른 승객의 지갑을 슬쩍하거나 추행을 하는지, 그리고 운전기사가 요금을 가로채는지 감시한다. 파출소의 CCTV는 경찰관이 피의자의 인권을 유린하는지, 취객이 경찰관을 폭행하는지 감시한다. 자가용 승용차에 설치된 블랙박스는 교통사고가 났을 때 피해자인 내가 억울하게 가해자로 둔갑되지 않는지 감시한다.

CCTV는 호시탐탐 보다 내밀한 공간으로의 영역확대를 꾀한다. 지난 1월 어린이집 보육교사의 네살짜리 어린이 폭행사건이 드러나면서 비난 여론이 들끓자 정부는 모든 어린이집에 CCTV를 달자는 방안을 들고 나왔다. 지난 3월 국회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이 부결됐으나, 같은 취지의 법안이 다시 추진되고 있다. 정부는 “아이들은 자기의사를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인권보호와 부모님들의 염려를 해소시키기 위해서”(장옥주 보건복지부 차관) 어린이집 CCTV 설치 의무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영유아가 가정을 나서서 처음으로 접하는 공적 공간일 가능성이 높은 어린이집에 의무적으로 CCTV가 설치되고 나면 학교 교실에도 달자는 주장이 나올 것이다. 교실에서는 급우 간 왕따와 폭행, 교사의 폭행과 추행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다. 폭행과 성추행, 자살이 빈발하는 군 내무반도 유력하다. 가정집은? 자기 아이를 학대하는 부모도 많으니 가정에도 의무적으로 CCTV를 달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CCTV에 대한 수요를 낳은 것은 불신이다. 그런데 CCTV라는 값싼 해결책에 기댈수록 신뢰가 자랄 수 있는 토양은 줄어든다. 불신이 CCTV를 필요로 하고, CCTV가 신뢰가 자랄 가능성을 차단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렇게 무한 불신 사회는 CCTV 감옥에 우리를 가둔다. 이 감옥은 ‘만인이 만인을 두려워하고 싸워야 하는 사회’에 다름 아니다.


김재중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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