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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정권에서의 이화여대 정유라 사태를 필두로 작년과 올해의 학종 신뢰도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 최근에 불거진 사립유치원 문제, 숙명여고 사태 등 공교육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한 느낌이다. 불신은 부분적인 것일 때는 몸에 난 종기처럼 짜내고 치료를 하면 그만이지만 전면화되었을 때는 골수에 스민 병처럼 냉정하게 진단을 내리고 정확한 처방을 하지 않으면 치명적일 수 있다.

공교육에 대한 불신이 나날이 커지는 데는 여러 차원, 여러 측면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선 공교육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는 가장 근본적 차원의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 지난 산업화 시대에는 학교교육이 학생들에게 미래의 삶에 대해 어느 정도 확실한 답을 주었다. 학교교육에서의 성공이 상당 정도 직업에서의 성공으로 이어졌고, 한번 잡은 직업은 평생 직업으로서 안정적이었다. 그러니 학교교육이 상당한 권위를 갖게 됐다. 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신뢰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의 학교교육은 학생들의 미래에 대해 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른바 스카이대 졸업자의 실질적 취업률이 50% 내외이고 직업을 갖게 되더라도 평생 직업으로 보장이 되지 않으니 학교교육에서의 성공이 직업 세계에서의 성공으로 이어지지 않는 셈이다. 빠르게 큰 폭으로 변화하는 현실 앞에서 불안해하는 국민들은 미래에 대해 답을 주지 못하는 학교교육을 시간이 갈수록 더 불신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학교교육이 학생들의 미래에 대해 답을 주지 못하게 된 데는 기본적으로 지능정보사회, 인공지능 자동화의 급진전 등의 변화가 직업을 불안정하게 하는 특성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학교교육이 여전히 산업사회 시스템에 머물러 있어 학생들에게 빠르게 변화하는 미래사회에 대응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지 못하는 것도 큰 이유이다. 산업사회 시스템과 시장주의를 넘어 미래사회 변화에 부응하는 교육체계를 수립하기 위한 교육개혁을 더 이상 미루기 어려운 이유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미래사회 변화에 부응하는 교육개혁 추진을 현재의 교육부 시스템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지난 산업화 시대 학교교육 체계는 “서구에서 생산된 지식을 될 수 있으면 하루빨리 받아들여 될 수 있는 한 많은 사람에게, 될 수 있는 한 짧은 시간에 주입·암기케 함으로써 서구 선진국을 빨리빨리 쫓아가야 한다”로 요약된다. 교육개혁, 교육정책에 대한 정답 역시 이미 서구 선진국, 특히 미국에서 기성품으로 생산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박정희 시대에 미국 차관으로 설립된 한국교육개발원과 미국 유학파가 주류를 이루는 각 사대, 교대의 연구자들로 하여금 약간 가공하게 하여 써먹으면 되는 거였다. 교육부는 정책에 대한 연구 발주를 하고 그것을 받아 정책으로 내려보내고 그 정책들은 일종의 절대반지로서, 이의제기가 있을 수 없는 정답이기 때문에 그 정책이 학교현장에서 어떻게 시행되는지 점검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교육부에는 중장기 정책기획 기능과 정책에 대한 사회적 합의 기능, 정책 시행과 관련하여 현장과 피드백하는 구조가 매우 취약하다.

그런데 지능정보사회, 인공지능 자동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한국이 따라갈 선진국 모델이 사라졌다. 한국은 이미 선진국의 입구에 들어섰다. 인공지능 자동로봇 밀도가 미국의 3.5배, 일본의 2.5배로 압도적 세계 1위인데 어떻게 앞선 모델이 있을 수 있겠는가? 이제는 앞선 모델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 길을 만들어 나가야만 한다. 이렇게 우리의 현실과 실천에 기반하여 길을 만들어 나가려 할 때 교육부가 선진국 모델 따라가기의 하향식 정책 시스템에 머물러 있다면 이는 심각한 장애요인이 된다. 그러한 시스템으로는 변화하는 현실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정책의 혼선과 난맥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고, 교육부에 대한 불신이 날로 깊어질 수밖에 없다. 산업화 시대 선진국 모델 따라가기 정책 시스템을 넘어서서 우리의 현실과 실천에 기반한 중장기 정책기획 기능, 정책에 대한 사회적 합의 기능, 정책 시행에 대한 학교 현장과의 피드백 기능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국가교육회의 등 교육거버넌스 개편 논의는 현 교육정책 시스템의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한번 곰곰이 짚어보아야 할 것은 지난 정부 정유라 사태부터 지금의 사립유치원 사태까지 학교교육의 국민적 불신을 촉발한 사건의 공통점이 사립학교라는 점이다. 학교교육의 개혁적 변화가 막히는 지점도 사립의 비중이 높은 고등학교부터이고 사립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대학은 개혁이란 말을 꺼내기가 좀 어색할 지경인 게 사실이다. 정부의 경제적 유인책에 의해 확대된 사립재단들의 생존과 발전에 대한 요구는 늘 우리 사회 중상층의 계급 계층적 구별짓기 욕구와 만난다. 자사고, 특목고와 같은 고교 서열화가 그렇고, 서울대를 예외로 하면 대학의 서열화가 그렇다. 이러한 서열화는 우리 학교교육을 산업사회형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고 왜곡된 학교문화를 만들어낸다. 교육 수요가 늘어나는 시기에 국가가 재정 부담을 회피하기 위해 경제적 유인책을 통해 민간자본을 학교로 끌어들임으로써 학교교육의 공공성을 스스로 훼손한 것은 참으로 오래 치유되지 않을 아픈 상처로 남을 것 같다.

<김진경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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