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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도토리랑 콜라가 오해가 있었나 봐.” 공동육아어린이집 학부모가 교사들 이야기를 하는데, 옆 테이블에서 힐끔거리는 시선이 느껴진다. 대부분의 대안학교나 공동육아어린이집에서는 ‘선생님’이란 호칭 대신 별명을 부른다. 물론 아이들도. “뿡뿡이, 나 쉬 마려워” 이런 식이다. 예전엔 그래도 돌고래, 백곰, 제비꽃, 개나리 등 동식물이 많아 맥락상 의인화하기가 쉬웠는데, 최근엔 콩자반, 발바닥, 배고파 같은 특이한 별명을 선호하는 추세라 서로 이름 부르는 일이 더 재밌어졌다.

공동육아 초창기, 나이와 경험의 위계에서 벗어나자고 교사들끼리 서로 별명을 부르다 나중엔 아이와 부모들까지 그러기로 했다. 대안학교 중에는 교사 이름을 부르는 곳도 있다. “누구누구야” 하는 호격조사는 빼고 이름 두 글자만. 동방예의지국에서 아이들에게 반말을 가르친다니, 함부로 선생님 별명과 이름을 부른다니 과연 제대로 교육이 될까 싶지만 실제로 해보면 장점이 많다. 대안학교나 공동육아어린이집 아이들이 어른에 대한 경계심이 덜하고 낯선 이와도 쉽게 친해지는 건, 이런 언어문화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인간은 생각보다 사회적 동물이어서, 어린이집에서 그렇게 배웠다고 아무한테나 찍찍 반말을 해대는 아이도 없다.

한국 사회의 유별난 호칭 문제를 개선하고자 직함 대신 서로 이름을 부르거나 ‘님’으로 통일하는 회사들이 늘고 있다. 복잡한 직함을 빼고 ‘쌤’ ‘님’으로 통일하자는 서울시교육청의 발표도 수직적인 공무원 사회의 변화를 노린 것일 텐데, 초점이 좀 어긋났다. 이 안을 ‘아이들에게도 적용하는가’ 하는 문제로 번져 논란이 일었다. 다수는 반대 입장을 드려냈다. 전교조마저 “쌤은 교사를 얕잡아보는 호칭이고, (…) 가뜩이나 교권 침해에 시달리는 교사들이 ‘선생님’이라는 호칭에 마지막 자긍심과 위안을 느끼고 있다”며 호칭 변경에 우려를 표했다. ‘쌤’은 과연 교사를 낮추어 부르는 말일까. 모든 교사에게 ‘쌤’이라 부르면서, 한 명에게만 ‘선생님’이란 호칭을 고수하는 학생이 있었다. 이유를 묻자 학생은 말했다. 안 친해서 그렇다고.

호칭은 서로의 역할을 드러내는 동시에, 관계를 설정한다. 서로 별명을 불러도 사제지간 혹은 교사와 학생이라는 역할은 바뀌지 않는다. 대안학교에서의 경험으로 보면, 자유로운 호칭을 통해 오히려 교사와 학생을 넘어서는 제3의 관계가 형성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역할을 호칭으로 묶어두는 한, 둘의 관계는 그 역할을 넘어설 수 없다.

사실, 오래전부터 학생들은 교사들의 별명을 불러왔다. 앞에서는 공손히 선생님이라 해도, 뒤에선 “야, 수학 온다!” “미친개 떴다!” 하지 않는가. 고등학교 때 물리선생의 별명은 ‘제물포’(쟤 때문에 물리 포기), 교감선생의 별명은 ‘이사도라’(24시간 돌아다니며 감시), 날마다 교문을 지키는 학생주임의 별명은 ‘에이즈’(걸리면 죽기 때문)였다. 그런 험악한 별명으로 불릴 바에야, 맘에 드는 별명 하나 만들어서 학생들에게 다정하게 불러달라는 건 어떨까.

성급한 발표로 뭇매를 맞고 있지만, 서울시교육청이 제안한 호칭 개편의 배경을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교권이 무너지고 위계질서가 엉망진창이 될 거라는 염려는 ‘이미 권력을 쥐고 있는 자’들의 말이다. ‘선생님’이란 호칭을 지켜낸다고, 진정한 ‘선생님’이 될 수 있을까. 교육이 무너지는 이유가 그것 때문은 아닐 것이다.

<장희숙 | 교육지 ‘민들레’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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