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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흥미로운 사회의식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아니 안타깝고 서늘한 자료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사회통합 실태 진단 및 대응 방안 연구(V)’가 그것이다. 이 연구보고서는 계층갈등, 젠더갈등, 세대갈등, 공공갈등을 중심으로 사회갈등과 사회통합을 포괄적으로 다룬다.

보고서에서 나의 시선을 특히 끈 내용은 두 가지다. 먼저 타인 신뢰에 관한 것이다. 조사 문항은 ‘내가 완전히 믿을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에 대한 ‘동의’와 ‘반대’로 이뤄져 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동의(‘매우 동의’와 ‘약간 동의’)는 63.15%이고, 반대(‘매우 반대’와 ‘약간 반대’)는 13.25%다. 이어 나를 이용할 가능성에 대한 인식 또한 주목할 만하다. 조사 문항은 ‘만일 조심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은 나를 이용하려 들 것이다’에 대한 동의와 반대로 구성돼 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동의는 54.24%이고, 반대는 16.22%다.

이런 조사 결과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유사한 통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사회 연계 지원’에 관한 국제 비교다. 2015년 자료에 따르면, ‘어려울 때 의지할 친구나 친지가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회 연계 지원 부문에서 우리나라는 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꼴찌(72.37점)를 기록했다. 다른 이들을 신뢰하기 어렵고, 다른 이들은 나를 이용할 가능성이 높으며, 어려울 때 의지할 이들이 매우 드문 공동체가 정직한 우리 사회 현실임을 여러 조사 결과들은 증거하는 셈이다.

이러한 해석에 물론 반론도 가능하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 ‘금 모으기 운동’에서 2017년 전국민적인 촛불집회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는 강력한 공동체주의적 열망을 과시한 바 있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실존의 ‘개인적 자아’보다는 가족과 국가의 ‘관계적 자아’를 중시하는 동아시아적 전통으로부터 작지 않은 영향을 받고 있다. 비정한 개인주의와 온정적 공동체주의가 기묘하게 공존하는 사회가 한국사회의 현재적 모습일 가능성이 높다.

주목할 것은 이러한 불신이 불안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불신이 개인 간의 관계를 드러내는 것이라면, 불안은 개인 자신의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 둘은 서로 인과관계를 구성한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신뢰를 갖지 못하니 나의 삶이 불안하고, 나의 삶이 불안하니 타인과의 관계에서 신뢰를 갖지 못한다. 불안과 불신이 이렇듯 결합돼 함께 증폭돼 온 것이 우리 사회의 솔직한 자화상이 아닐까.

불안과 불신은 그 자체로 끝나지 않는다. 이 두 기제는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불안은 두려움으로, 불신은 무관심으로 변모한다. 그리고 다시 두려움은 공포로, 무관심은 냉혹으로 진화한다. ‘불안-두려움-공포’에 대한 사회심리적 반작용이 ‘적대’라면, ‘불신-무관심-냉혹’의 사회심리적 인과물이 ‘혐오’이지 않을까. 우리 사회에서 마주하는 적대와 혐오의 원인을 모두 불안과 불신에 귀속시킬 순 없다. 그러나 불안과 불신이 시민문화의 사회심리학적 코드로 자리 잡았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이 불안과 불신의 시민문화의 다른 이름이 각자도생(各自圖生), 적자생존(適者生存), 약육강식(弱肉强食)의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의 망탈리테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민문화의 기원은 어디에 있는 걸까. 어떤 이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남아야 했던 광복 이후 모더니티의 그늘에서, 어떤 이는 외환위기 이후 증가해온 사회적 격차와 불평등에서, 또 어떤 이는 상호작용 밀도가 높은 사회에서 두드러지는 상대적 박탈감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어느 하나에 귀속시킬 수 없는 다차원적 원인이 서로 결합해 불안과 불신의 시민문화를 주조해 왔다고 보는 게 온당할 것이다.

불안과 불신의 시민문화를 안심과 신뢰의 시민문화로 바꾸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요구될 것이다. 또 격차와 불평등 같은 사회경제적 원인을 해결하지 않는다면 그 대책은 일시적 미봉책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분명한 것은, 그 원인이 다차원적인 만큼 그 해법은 정치·경제·문화 등 다각적으로 마련돼야 하고 그 주체 또한 정부·기업·시민사회 등 어느 하나에만 떠넘길 수 없다는 점이다.

모더니티의 궁극적 목표는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를 이루는 데 있다. 우리 사회를 비관적으로만 독해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절반의 모더니티’만을 성취한 사회가 한국 사회의 현재적 초상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기도 어렵다. 나머지 절반의 모더니티라 할 수 있는 공동체로서의 사회를 일궈가길 바라는 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김호기 |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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