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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대의 역사가들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의 시대를 어떻게 규정할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등장한 ‘진보의 시대’의 종언을 알린 게 1980년대 신자유주의였다면, 신자유주의가 연 ‘보수의 시대’의 종언을 고한 것은 2008년 금융위기였다. 2008년 9월15일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으로 시작된 금융위기가 일어난 지 10년이 지났다. 세계사회는 이제 어떤 시대로 나가는 걸까.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지난 10년 동안 대다수 나라에서 유사한 경향이 존재해 왔다는 점이다. 정치적 포퓰리즘의 부상,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 문화적 정체성의 도전이 그것이다. 포퓰리즘이 위기에 처한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정치적 대응이었고 불평등이 신자유주의 정책의 경제적 결과였다면, 정체성의 정치는 신보수주의의 가부장제에 대한 문화적 거부였다. 나는 앞으로 세 차례에 걸쳐 금융위기 이후 사회 변동을 살펴보려고 한다.

정치적 차원에서 금융위기 이후 지난 10년을 ‘포퓰리즘의 시대’로 파악하는 것에 나는 대체로 동의한다. 까닭은 두 가지다.

첫째, 포퓰리즘이 보여주는 힘이다. 오늘날 포퓰리즘은 서구사회는 물론 비서구사회에서 우파와 좌파에 걸쳐 폭넓게 관찰된다. 우파 포퓰리스트들이 반이민과 반난민의 정서 및 정책을 무기로 삼는다면, 좌파 포퓰리스트들은 기성 정치 엘리트의 부패 및 경제 엘리트와의 결탁을 공격한다. 이탈리아의 ‘오성운동’과 ‘동맹’ 연정에서 그리스의 시리자 정부까지의 사례들에서 볼 수 있듯, 포퓰리즘 정치는 기성 정치의 반대를 넘어서 현실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 민주주의와 포퓰리즘의 혼란스러운 공존이 금융위기 이후 10년의 정치적 풍경이다.

둘째, 반엘리트주의가 갖는 힘이다. <누가 포퓰리스트인가>를 쓴 정치학자 얀-베르너 뮐러에 따르면, 포퓰리즘은 대의정치의 ‘항구적인 그림자’다. 대의민주주의는 본디 투표를 통해 의사결정을 위임하기 때문에 엘리트주의의 위험을 가질 수밖에 없다. 적지 않은 국민들은 선거에 참여할 때 정치의 주체임을 자각하지만, 선거가 끝난 다음 이내 객체임을 깨닫게 된다. 게다가 상당한 전문적 지식을 요구하는 국가 의사결정의 복합성은 대의정치로부터의 소외감을 안겨준다.

이런 현실에 착목해 포퓰리스트들은 ‘엘리트 대 국민’이라는 이분법으로 지지 세력을 결집시킨다. 포퓰리스트들에게 엘리트란 기득권의 다른 호칭일 따름이다. 포퓰리스트 정치가들은 정치의 목표가 엘리트 기득권에 맞서서 인민 주권을 회복하는 데 있다고 주장한다. 논리보다 정서에 의존하고, 민중이 정치의 주인임을 내세우는 게 포퓰리즘 정치의 중핵을 이룬다. 이런 반엘리트주의는 많은 대중에게 강렬한 호소력을 가지며, 이런 호소력은 포퓰리즘의 지구적 부상에 결정적 영향력을 미쳐 왔다.

포퓰리즘이 부상한 정치적 차원의 요인으로는 ‘민주주의의 탈민주화’ 경향을 들 수 있다. 정치학자 웬디 브라운은 탈민주화의 다섯 가지 경향을 제시한 바 있다. 자본이 정치를 압도하고, 마케팅 전략이 선거를 지배하며, 수익성과 효율성의 신자유주의 합리성이 자유와 평등의 민주주의 합리성에 우선하고, 정치가 법원으로 넘어가며, 세계화가 국가주권을 약화시키는 현상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탈민주화 경향이 민주주의를 ‘텅 빈 기표(記標)’로 만들었다고 브라운은 진단한다. 이 텅 빈 기표에 새로운 기의(記意)를 채우려는 시도가 포퓰리즘의 전략이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포퓰리즘이 민주주의에 미치는 영향이다. 뮐러가 지적하듯, 반엘리트주의가 모두 포퓰리즘인 것은 아니다. 포퓰리즘의 중요한 특징은 엘리트주의와 다원주의를 모두 반대한다는 점에 있다. 포퓰리스트들은 자신을 지지하는 이들만을 ‘진정한 국민’으로 여긴다. 그리고 포퓰리스트 정치가 자신들과 진정한 국민만이 정치적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렇듯 포퓰리즘은 정치적 다원주의를 부정함으로써 결국 민주주의를 위협하게 된다.

지구적 차원에서 전후 정치를 이끌어 온 양대 동력은 ‘자본 대 노동’의 계급 균열과 ‘보수 대 진보’의 이념 균열이었다. 세계화의 진전은 이런 균열들에 ‘민족주의 대 세계주의’라는 균열을 더했다. 그리고 금융위기 이후 ‘엘리트 대 국민’이라는 새로운 균열이 부상함으로써 정치적 적대 구조는 다층화돼 왔다. <포퓰리즘의 세계화>를 발표한 저술가 존 주디스는 포퓰리즘의 등장이 정치의 표준적 세계관이 고장 났다는 신호라고 충고한다. 나는 포퓰리즘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러나 금융위기 이후 포퓰리즘이 안겨주는 경고와 우리 정치에 던지는 함의에 대해서는 마땅히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호기 | 연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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