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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여성의 남자친구인 척 행세하며 해당 여성의 사진과 다른 여성의 나체 사진을 함께 인터넷에 올린 남성이 항소심에서 법정 구속됐다. 2심 재판부가 벌금형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실형을 선고한 것이다. 디지털성폭력 범죄자가 재판에 넘겨진다 해도 대부분 벌금형 등 가벼운 처벌을 받아온 관행에 비춰볼 때 매우 이례적이다. 최근 서울 혜화역 시위에 여성 수만명이 모이는 등 불법촬영·유포범죄 근절 요구가 확산되자, 법원이 실형 선고를 통해 엄단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평가한다.

지난달 9일 서울 종로구 혜화역 인근에서 열린 ‘불법촬영 편파수사 2차 규탄 시위’에서 집회 참가자들이 여성에 대한 불법촬영 중단을 촉구하며 삭발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8부는 정보통신망법 위반(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이모씨에게 징역 8월을 선고하고 법정에서 구속했다. 이씨는 2016년 3~5월 인터넷 블로그에 자신의 페이스북 친구인 ㄱ씨의 사진과 함께 다른 여성의 나체 사진 수십장을 올린 혐의로 재판에 회부됐다. 이씨가 ㄱ씨 남자친구와 비슷한 이름으로 블로그를 만드는 바람에 ㄱ씨 주변에선 ‘남자친구가 사진을 찍어 올렸다’는 소문이 퍼졌다. ㄱ씨는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다 대인기피증과 우울증까지 얻었다. 결국 이씨를 고소했고, 1심은 이씨에게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그러나 “이 같은 범죄는 개인, 특히 여성에 대한 사회적·인격적 살인”이라며 1심 형량이 지나치게 가볍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인터넷에 한번 유포된 자료는 완전히 삭제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고, 완전히 삭제됐음을 확인할 수도 없다”면서 “피해자의 삶을 이 사건 범행 전으로 되돌릴 방법은 없다”고 실형 선고 이유를 밝혔다.

‘혜화역 시위’에서 드러난 여성들의 요구는 분명하다.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인간답게, 안전하게, 평화롭게 살아갈 권리를 보장해달라는 것이다. 화장실 벽에 뚫린 구멍을 막기 위해 여성들이 실리콘이나 스티커를 갖고 다니는 사회는 정상적이라 할 수 없다. 불법촬영·유포 등 디지털성폭력은 피해자의 영혼을 갉아먹는 중범죄다. 수사·사법기관은 디지털성폭력에 대해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고 처벌 수위를 강화해야 한다. 현직 판사가 지하철에서 여성의 신체를 몰래 찍다 현행범으로 체포되고도 벌금 300만원의 약식기소에 그친 사례가 되풀이돼선 안된다. 나아가 국회와 정부는 사회 각 부문에 만연한 성차별 구조를 뿌리 뽑고 평등사회로 갈 수 있도록 입법적·행정적 뒷받침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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