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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확행’ ‘워라밸’ ‘케렌시아’, 지난 몇 달 내 사회학적 그물망에 걸린 말들이다. 소확행이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말한다면, 워라밸은 일과 생활이 조화로운 균형을 갖는 것을 뜻한다. 케렌시아는 나만의 휴식 공간을 지칭한다. 세 말들은 각각 의미의 초점이 다르다. 하지만 공통점도 존재한다. 개인과 여가를 강조한다는 점이다. 크게 보아 개인의 행복을 중시하는 개념들인 셈이다.

이 가운데 현대사회론을 공부하는 내 시선을 특별히 끄는 말은 소확행(小確幸)이다. 이 개념의 기원은 1986년에 발표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 <랑겔한스섬의 오후>다. 갓 구워낸 빵을 손으로 찢어서 먹는 것, 겨울밤 부스럭 소리를 내며 이불 속으로 들어오는 고양이의 감촉 등이 바로 행복이라는 메시지다. 하루키다운 감성이다. 우리 사회에선 지난해 김난도 교수 등이 ‘트렌드 코리아 2018’에서 소개하여 널리 알려졌다. 대만에서는 지난해 크게 유행했다고 한다.

소확행은 일종의 소비 트렌드다. 소확행에 앞서 ‘웰빙’ ‘힐링’ ‘욜로’ 등이 존재했다. ‘트렌드 코리아 2018’이 지적하듯, 소확행은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라’는 욜로가 구체화된 모습이다. 소확행을 바라보는 데는 서로 다른 시각이 존재한다. 어떤 이들은 소소하지만 중요한 일상의 발견을 주목한 반면, 다른 이들은 젊은 세대의 좌절이 담겨 있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포스트 신자유주의의 새로운 이데올로기라는 과감한 주장까지 나와 있다.

분명한 것은 우리 사회의 경우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경향이 최근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소확행은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마음에 드는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자기 방식의 휴식을 취하는 평범한 일상들이다. 길게 본다면 1950~1960년대에 추구됐던 ‘소시민적 행복’이 ‘한국적 소확행’의 역사적 기원일 것이다. 가난에서 벗어나려 했던 산업화의 목표 중 하나도 개인적 차원에선 소확행의 실현에 있던 것으로 보인다.

평범하지만 소중한 일상이 재발견된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였다. 저성장과 불평등이 구조화되고 불안과 분노가 일상화되는 과정에서 삶의 의미에 대한 성찰이 진행되고, 행복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 제기됐다. 학업·취업·결혼으로 이어지는 생애주기의 자연스러운 진화가 어려워지면서 중산층의 삶을 누리는 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현실에 직면하게 됐다. 채워지기 어려운 미래의 욕망보다 당장 이룰 수 있는 현재의 행복이 더 중요한 소확행이 부상한 맥락이다.

행복은 정의하기 쉬우면서도 어려운 말이다. 행복이란 만족감·즐거움·기쁨이 존재하는 마음의 상태다. 아리스토텔레스 방식으로 말하면 ‘최상의 좋음’, 다시 말해 최고선이 행복이다. 그런데 행복이 간단하지 않은 것은 사람마다 그 최고선이 다르다는 데 있다. 행복은 단수가 아니라 복수로 존재한다. 만족감·즐거움·기쁨의 대상은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행복을 성취할 수 있는 조건 또한 다양하다. 어떤 이는 쉽게 행복에 도달할 수 있는 반면, 다른 이는 노력을 기울여도 행복에 다가서기 어려울 수 있다.

소확행이 소비 트렌드 이상의 의미를 갖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현대사회가 진전하게 되면서 개인주의가 강화될 수밖에 없다고 분석한 바 있다. 개인은 독립적인 존재가 되지만 그 독립적 정체성을 이루는 삶의 의미를 스스로 구성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게 된다. 끝없는 경쟁으로 이어진 정글 사회에서 자기만의 행복의 길을 찾아 나서야 한다. 개인이라는 ‘실존적 공화국’의 행복 추구 열망은 후기 현대사회가 가져온 결과다.

소확행의 출발이 소비에 있다면 소비에 대한 새로운 성찰 또한 필요하다. 철학자이자 역사학자인 미셸 드 세르토는 소비가 생산에 따른 수동적 행위가 아니라 일상생활의 능동적 구성 요소임을 주장한 바 있다. 소비는 계급에 구속된 행위이자 자신의 지위를 과시하는 행위다. 그러나 동시에 소비는 자신에게 만족감·즐거움·기쁨을 선사하는 주체적인 행위이기도 하다. ‘나는 소비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명제는 부정하기 어려운 21세기 소비사회의 자화상이다.

소확행의 의미를 과장하려는 게 아니다. 내년이 되면 새로운 트렌드가 나타날 수 있다. ‘큰 서사’인 계몽주의의 자장 안에서 성장한 내게 ‘작은 서사’인 소확행은 여전히 낯선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확행이 제기하는 행복의 질문은 결코 가볍지 않다. 삶은 일상의 연속이며, 일상은 본디 거룩한 것 아니겠는가. 자신의 일상과 행복을 돌아보게 하는 것만으로도 소확행은 한 번쯤 그 의미를 생각해볼 만한 개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김호기 | 연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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