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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서울 강북구에 있는 한신대학교에서 치러진 전국 대학생 토론대회에 심사를 하러 갔다. 강북구청이 마련한 ‘4·19혁명 국민문화제’ 행사의 하나였다. 4월혁명의 역사적 의미와 그 현재적 과제를 놓고 청년세대들이 활기차게 벌인 토론은 우리 민주주의의 역사를 다시 한번 돌아볼 기회를 안겨줬다.

내일은 4월혁명이 58주년을 맞이하는 날이다. 4월혁명을 생각하면 내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청록파 시인 박두진이 4월 혁명을 기린 시 ‘우리의 깃발을 내린 것이 아니다’다. “아름다운 강산에 아름다운 나라를,/ 아름다운 나라에 아름다운 겨레를,/ 아름다운 겨레에 아름다운 삶을/ 위해,/ 우리들이 이루려는 민주공화국./(…)/ 우리는 아직/(…)/ 우리들의 전진을 멈출 수가 없다./ 혁명이여!”라는 시인의 독백은 4월혁명이 추구한 정신이 민주공화국의 구현에 있었음을 생생히 증거한다.

우리 현대사에서 민주공화국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으로 표명된 것은 임시정부에서부터였다. 1919년 4월11일 선포된 대한민국 임시헌장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제로 함”이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는 황제가 없나요? 있소. 대한 나라의 과거에는 황제는 1인밖에 없었지마는 금일은 2천만 국민이 모두 황제요. 제군 모두가 황제요.” 임시정부의 한 주역인 안창호가 1920년 임정 신년축하회 연설에서 한 말이다. 대한민국의 ‘민국(民國)’이란 ‘국민의 나라’, 다시 말해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뜻한다.

이러한 대한민국이 일본의 식민 지배로부터 광복을 이룬 것은 1945년이었다. 1948년에는 임시정부에 이어 새로운 정부 수립이 이뤄졌다. 당시 대한민국에 부여된 시대적 과제는 두 가지였다. 가난으로부터 벗어나는 산업화가 하나였다면,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민주화는 다른 하나였다. 1960년 4월혁명이 갖는 역사적 의의는 후자의 민주화의 역사에서 출발점을 제공했다는 점이다.

4월혁명은 일련의 과정으로 이뤄져 있다. 장기 집권을 위해 부정선거를 획책한 이승만 정권에 대한 시민들의 거부와 항의는 잇단 시위로 나타났다. 2월28일 대구 고등학생 시위, 3월15일과 4월11일 두 번에 걸친 마산 시위, 4월19일 서울에서 학생과 시민이 주도한 대규모 시위, 그리고 4월25일 교수단 시위가 그것들이었다. 4월혁명의 결과,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했고 이승만 정권은 막을 내렸다.

반독재 투쟁으로 시작한 4월혁명은 학생과 시민이 중심을 이룬 ‘시민혁명’이자 국민이 나라의 주인임을 확인한 ‘민주혁명’이었다. 민주화는 본디 이중의 과정으로 진행된다. 한편으론 민주주의 제도의 정착으로 나타나고, 다른 한편으론 민주화를 요구하는 사회운동으로 구체화된다. 영국 명예혁명, 프랑스대혁명에서 볼 수 있듯, 앙시앵 레짐을 거부하고 새로운 체제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집합행동은 민주주의를 확산시키고 심화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우리 현대사에선 4월혁명이 이러한 민주화운동의 효시를 이뤘다.

4월혁명에서 주목할 또 하나의 특징은 아래로부터의 시민사회운동이 성공한 최초의 경험이었다는 데 있다. 비록 5·16쿠데타에 의해 좌절됐지만 4월혁명은 제2공화국을 성립시켰다. 성공한 사회운동인 만큼 4월혁명은 이후의 사회운동들에 지속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 4월혁명의 주도 이념인 민주주의는 이후 반독재 사회운동의 사상적 지반을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4월혁명에 대한 집합적 기억은 시민사회 내 정서적 공감대의 원천을 형성했다.

1987년 6월항쟁과 2016년 촛불혁명은 4월혁명과 여러 측면에서 닮았다. 주체의 측면에서 6월항쟁과 촛불혁명은 4월혁명처럼 학생과 시민이 운동의 중심 세력을 이뤘다. 촛불혁명의 경우 학생보다 시민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긴 했지만, 이는 민주주의의 저변이 그만큼 넓어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편, 목표의 측면에서 세 사회운동들은 모두 권위주의 정권을 거부하고 민주주의 국가를 요구했다. 국가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며 국가의 주인은 바로 국민이라는 국민주권 원리는 민주화운동을 이끈 원동력이었다.

대학생 토론대회로 돌아오면, 이날 토론대회의 주제는 ‘청년, 민주주의를 말하다’였다. 내가 감동을 받은 것은 4월혁명에 대한 청년세대의 인식과 태도였다. 청년실업 등 자신들이 놓인 처지가 어려운데도 청년들은 4월혁명에 담긴 국민주권의 의미를 올바로 이해하고 그 실천적 대안을 놓고 치열하게 논쟁했다. 민주주의는 절로 성취되지 않는다. 그것을 지키려는 노력을 기울일 때 민주주의는 발전한다. 4월혁명 58주년을 맞이하는 한 민주주의 연구자의 소회를 여기에 적어둔다.

<김호기 | 연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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