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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4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눈꼬락쟁이(애꾸눈)도 아니고 고랑을 쫙하니 빤닷하게 빼야재. 그라고 허부적거림시롱 빼틀어지게 맹글어따가 워디다 쓰꺼시오. 첫삽에 눈애개 봐야쓰재 미꼬랭이(미꾸라지) 헤엄치대끼 고랑을 맹글다 보믄 비가 암만 허뿍이(충분히) 와싸도 뻘구덕이나 돼야불재 뿌리로 스매들지가 안해분닥 말이오.” 또 참견이 시작된 것이다. 퍼허 웃고 말뿐. “물긋물긋 보고섰지만 말고 금방 껑껌해질 틴디(어두워질 텐데) 마저 허시재만 그라시요. 아이고메 따블(나무아미타불이 그렇게 들림) 벌떡증이 나가꼬 더는 못보겄소. 호미자루 일루 줘보쇼잉.” 할매가 호미를 빼앗아 후다닥 심어주신 옥수수밭. 여름에 옥수수가 몇 수나 달릴 거나. “비니루를 안 덮으믄 풀이 아조 수두럭뻑적하게 달라들틴디 으짜실라고 그라요. 봉게로 집에 꽃은 여엽스럽게(단정하게) 잘도 애끼시등만 농사는 송신병이 나서 동당이질 친 사람 맹크로 엄배덤배. 항시 딴다리만 잡고 성의라고는 영 없으십디다잉.” 올해도 이것저것 작물 좀 심고, 남이야 말아 묵든가 삶아 묵든가 훈수 놓고 신청하는 재미로 사시는 할매들. 해마다 종류별로 얻어듣는 지청구렷다.

꼬부랑 할매가 마을로 내려가고 나는 흙집으로 쏙하니 들어오고. 심심해서 라디오를 틀었더니만, 나무아미타불 부처님오신날. 부처님은 방금 나에게 다녀가셨는데. 말끝마다 아이고매 따블. 꼬부랑 부처님. “야소교면 어떻고 불도면 어떠랴. 걱정 말고 숨길 것 없이 정성을 다해 믿어라. 다만 편지나 자주 했으면 좋겠구나. 나는 부처님 앞에 빌고 너는 십자가 앞에 빈다면 한쪽에서는 이뤄지는 게 있겠지. 일흔이 지난 지금껏 몸서리치는 이 가난, 이 업신여김, 네 대는 없어야지. 내일이라도 내사 눈 감으면 그만이지만. 이 칠칠한 것아.”(정규화 시인, 개종한 아들을 위해)

종교가 아니라 다만 사람이다. 정치권력이나 경제이윤이 아니라 사람. 사람으로 오신 꼬부랑 부처님이 외로워서, 하루 종일 말 한마디 못하다가 나를 붙잡고 속사포로 유세연설을 하고 가신 날. 부처님과 말동무하려면 밭농사를 늘 망하게(?) 지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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