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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박 시 틀니 압수.” 랜선 세계를 떠돌다가 우연히 마주친 표현이다. 여기서 만난 것 대부분이 금세 잊히는데, 이것은 꽤 오래 기억에 남았다.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다.

“틀니 압수”는 ‘꼰대짓’하는 사람의 입을 다물게 하는 맥락에 쓰인다. 노인들이 들으면 서러울 말로, 꼰대짓하는 사람은 대개 나이 많은(그래서 치아가 손실된) 사람일 것이라는 편견이 내재돼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어떤 사람이 꼰대인가?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것은 꽉 막힌 태도를 가진 사람이다. 그렇다면 반박 시 틀니를 압수하겠다고 선언하는 인간은? 반박을 ‘금지’하는 태도는 꼰대의 것으로 보기 손색없다. 의도한 것이든 아니든 절묘한 아이러니이다. 

꼰대적 태도는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나 가질 수 있다.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일이라는 이유만으로 설득 없이 강요하는 것, 서열 짓고 차별하는 것, 오롯하게 개인으로 보지 않고 당사자가 원치 않음에도 특정 집단의 틀로 규정짓는 것 등 당해보면 불쾌한 폭력이다. 치아의 유무가 기준이 아니다. (나쁜) 매너가 꼰대를 만든다. 

꼰대에게 당해본 이들은 다짐한다. 나는 꼰대가 되지 않겠다! 그렇게 다짐한 친구들 중, 이끌어야 할 후배가 생긴 30대의 고민은 깊어졌다. 후배에게 개선점을 지적한 날마다 친구의 마음은 불편했다. 오늘 후배에게 지나치게 참견했나? 말투에 문제는 없었나? 마음에 걸렸지만 그런 날을 반복했다. 프로젝트 결과물이 훌륭하면 물론 좋지만, 힘들게 취업했는데 후배가 업계에 오래 발붙이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었다고 친구는 말했다. 나쁘게 말하면 오지랖이요, 좋게 말하면 다정함일 텐데 대충 후자라고 해주자. 

어쨌든 그런 날이 반복됨에도 마음을 편히 갖지 않고 계속 스스로를 경계한다는 사실에 희망을 봤다. 이 친구가 중증 꼰대는 되지 않겠구나. 진짜 심각한 꼰대는 자기가 꼰대인 줄도 모를 것이다. 어쩌면 꼰대가 되지 않겠다는 강박보다, 내가 누군가에게 꼰대일 수 있음을 받아들이고 그나마 괜찮은 꼰대가 되려고 노력하는 게 나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끊임없이 ‘성찰하는 꼰대’가 되는 것이다. 이런 얘기를 친구에게 했더니 그는 말했다. 

“넌 회사 안 다니잖아….”

“아무래도 그렇지? 내가 미안해….”

빠른 사과 역시 그나마 괜찮은 꼰대가 되는 길이다.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든, 어디서든 꼰대가 될 가능성이 있다. 10대도 20대도 마찬가지. 뭐든 확신이 문제다. 꼰대는 나와 관계없는 단어라는 확신이 젊은 꼰대를 만든다. 가치관의 어떤 부분은 신선하고 말랑거리겠지만 어떤 부분은 기성의 것과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사회로부터 공기처럼 흡수한 혐오와 차별의 시선이다. 

인터넷 공론장의 쌍방향 소통은 재사회화에 도움이 된다. 인터넷은 상대적으로 위계 없이 대등하게 주장을 주고받고 ‘반박’하며 토론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뒤섞이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는 거다. 물론 그 전에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타인이 규정짓는 나’가 아닌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자신을 발견하고, 서사를 쌓아가고, 정체성을 확립하는 시간. 그 뒤 (랜선을 통해) 나의 방과 세계는 연결되고 타인과 연대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는 ‘희망편’이고, 지금 한국 랜선 세계에서는 ‘절망편’이 펼쳐지고 있다 하더라. 개개인이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에서도 많은 이들은 ‘집단’에 속하기를 택하며, 특정된 개인들 역시 집단으로 규정하여 쥐어 패고 다닌다고. ‘그’ 사람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가진 편견으로 공격하는 일은 꼰대와 다를 바 없지 않을까? 게다가 다수가 한 사람을 공격할 때 공격받는 개인은 명백히 약자일 수밖에 없음에도, 신원이 노출돼 위험을 느끼는 개인의 고통에 대한 상상력이 없는지 언어폭력을 멈추지 않는 이들…. 이거 웬만한 꼰대보다 더 나쁜 것 같은데? 이건 솔직히 키보드 2주 압수해도 된다고 본다.

<최서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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