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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광복 이후 미소의 냉전 대립, 좌우익의 이념대립, 그리고 한반도의 분단상황에서 정권을 잡은 이승만, 김일성 정권에 적대적인 남북관계는 자신들의 정권을 유지하고 국내를 통치하는 가장 기초적인 존립기반이었다. 위정자들은 통일문제, 남북관계를 독점하면서 자신들의 정권을 보위하는 수단으로 이용해 왔다. 남쪽에서는 ‘빨갱이’, 북쪽에서는 ‘미제간첩’이라는 말. 즉 냉전 반공주의와 미제국주의 주구라는 적대적 용어는 다양하고 중도적인 이념지향을 전혀 허용하지 않았으며 사회를 양극단으로 내몰았다. 다른 정치세력의 존립은 허용되지 않았고 자유로운 민주주의 발전을 가로막아 왔다. 북한에서는 노동당만, 남한에서는 분단을 찬성했던 이승만의 자유당과 토착지주세력인 한민당만 정당으로 기능했다.
남북관계를 통한 국내정치 변수는 두 가지 특징을 보여준다. 3대 세습의 북한정권 존재요건은 바로 적대적인 대남정책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전쟁에 대한 공포, 남과 북의 대결환경은 북한 주민들을 김일성주의 정권에 순종시키는 중요한 통치 수단이다. 한국전쟁을 겪은 한국국민에게 북한 정권은 국민의 생명과 삶을 위협하는 존재다. 따라서 북한연계 집단뿐만 아니라 친북, 종북 등을 지향하는 운동세력은 바로 반국가적 정치세력으로 간주되며 이들을 과감하게 제거, 탄압하는 통치술로 정권은 그 보위력을 유지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하에서 정권의 위기 때마다 터져 나온 혹은 조작된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은 이를 증명한다. 최근 해산 결정을 받아낸 통합진보당 사건역시 시대적 환경과 방법만 세련(?)되어졌을 뿐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박근혜·오바마·시진핑·김정은 (출처 : 경향DB)
두 번째 특징은 통일과 평화에 대한 국민적 열망을 적절하게 이용하며 민족 지도자로서의 위치를 공고하게 하려 한다. 국내정치를 한번에 아우를 수 있는 거대 담론의 효과도 볼 수 있다. 이승만의 북진통일론, 김일성의 남조선 해방 무력통일론, 고려연방제론, 박정희의 8·15 평화통일방안 등은 이들이 진정 남북의 평화적 통일을 원했다기보다는 독재체제의 공고화에 남북관계를 이용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및 남북 평화와 화해에 대한 노력은 장기적 전망하에 추진된 것이지만 소수정권의 한계 속에서 이어지지 못하고 말았다. 김정은 정권은 집권 후 적대적 남북관계를 통해 내부체제 공고화를 도모했다. 제3차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은 후계자로서의 권력을 장악하는 데 일조했다. 그러나 핵과 경제 발전 병진노선을 밝힌 김정은으로서는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중국과의 관계회복 및 외국으로부터의 투자유치를 끌어내는 지렛대로 활용하려 하고 있다. 2년여 동안 뚜렷한 업적을 내놓지 못하고, 국내의 정쟁 갈등 속에 함몰되었던 박근혜 정부 역시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정권의 리더십을 회복하려 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올해 신년사에서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실질적인 통일의 시대를 열어갈 것”을 선언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드레스덴 선언, 통일대박론 등 여러 차례 자신의 구상을 밝혔지만 국내 선언용으로만 그쳤을 뿐 구체적인 남북관계 개선으로는 이어가지 않았다. 오히려 NLL 논란과 진보당 사건 등 대북 변수를 국내정치에 적극 활용해 왔을 뿐이다. 경제적 위기에서 벗어나야 하는 김정은, 지지율 하락 및 경제적 어려움, 그리고 국내정치 갈등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는 박 대통령, 2015년 남북관계 변수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이해관계는 어느 정도 맞는 것 같은데 과연 남북의 지도자들이 진정으로 통일을 향한 장도를 걸어 나갈지는 의문이다. 국민들만 또 평화와 통일에 대한 미련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닌지, 남북관계 개선이 국내정치용으로만 활용되지 않을까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유용화 | 시사평론가·동국대 대외교류硏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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