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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찌라시에나 나오는 이야기로 나라 전체가 흔들린다”면서 언론 탓을 하며 정권의 흔들림을 애써 무시하려 했다. 왜냐하면 비선 실세 라인의 국정농단 사건이 도마에 오르면 바로 레임덕이 올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제왕적 대통령제에 누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같은 날 박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리는 뉴스가 전해졌다. 국회에서 종교계, 시민, 전·현직 국회의원들이 참석하는 ‘개헌추진국민연대’가 구성된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여야 국회의원들이 중심이 돼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바꾸는 개헌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강한 부정에도 불구하고 비선 실세 논란은 제왕적 대통령제를 스스로 파괴하는 폐해를 보여주었다. 이승만 대통령의 아들 이강석에서부터 김영삼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 김대중 대통령의 아들 김홍업·홍일, 또한 노무현 대통령의 형 노건평, 이명박 대통령의 형 이상득, 그리고 박지만, 정윤회 논란에 이르기까지 대통령 측근들의 권력형 부정부패 사건은 일련의 역사적 괘를 형성하고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는 절대권력을 추구하는 그 제도적 성격으로 인해 자동적으로 대통령의 가족과 친·인척, 측근에게 막강한 사적권력을 부여했으며 그것은 결과적으로 자기 정권의 약화, 파괴로 몰고 갔다.

이는 제왕적 대통령제하에서의 절대권력에 따른 절대부패는 계속될 수밖에 없고, 집권 말기에는 결국 식물대통령으로 그 직을 마치게 됨을 보여주었다. 단지 박근혜 대통령은 절대권력을 추구하는 강도가 이전 대통령들보다 더 강하기 때문에 그 시기가 좀 더 일찍 다가올 수 있다는 예측을 할 수 있을 뿐이다.

한국에서 채용하고 있는 대통령중심제는 그 권력집중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 강하다. 국가수반으로서의 외교, 군 통수권뿐만 아니라 행정수반으로서 검·경찰, 각 부처 장차관 인사권까지, 또 미국식 대통령제에도 없는 계엄선포권, 선전포고권 등의 비상대권과 헌법개정 발의권, 국민투표 발의권까지 쥐고 있으며 마음만 먹으면 집권당의 대표까지 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현행의 제왕적 대통령제는 과거 독재정권의 막강한 대통령 권한에서 그 모태를 찾을 수 있다. 12·12 쿠데타와 5·17 반란으로 권력을 장악한 신군부는 7년 단임제와 대통령 간선제를 골자로 변형된 유신헌법으로 5공화국을 탄생시켰다. 그 이후 국민들은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으로 우리 손으로 대통령을 뽑는 직선제를 관철시켰다.

그러나 우리는 과도기적 목표로서 장기집권 방지와 직선제라는 권력구조의 일부 혁신에만 만족해야 했다. 즉 과거 독재정권으로부터 완전히 청산하지 못한 권력의 집중과 독식 문제는 차후의 과제가 된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에서 첫번째)과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세번째) 등이 9일 국회에서 열린 개헌추진국민연대 출범식에서 시민단체 관계자들과 함께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_ 연합뉴스


잦은 정쟁과 좌우 이념 대립으로 소모적 정치행각을 벌였던 프랑스는 1958년 드골의 분권형 대통령제 헌법을 관철시켜 그 후 모든 정파로부터 칭송받으며 안정된 정치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외교·군사권 등 국가를 대표하는 실질적인 권력을 갖는 국가수반인 대통령, 행정수반으로서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총리, 이 두 권력이 협력과 동거형태로 국가를 운영하는 프랑스 외에도 유럽에서는 13개의 국가가 분권형 대통령제를 채택하면서 국가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9일 출범하는 ‘개헌추진국민연대’가 얼마나 국민적 공감대를 끌어낼지 모르겠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제왕적 대통령제가 반민주적 속성으로 승자독식의 권력을 독점하는 한 일상적 정쟁뿐만 아니라 대통령 주변의 사적권력 농단은 그치지 않고 심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유용화 | 시사평론가·동국대 대외교류硏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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